다이어리 쓰기,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

by 윤슬작가

조금 전 다이어리를 정리했다. 일곱 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 목록인데, 그때그때 모습을 달리해오던 것이 요즘 제법 정착민의 모습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예전 회사 생활의 경험이 녹아든 목록이었다면, 이제는 제법 정체성이 갖춰진 느낌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접근했던 것 같다. 규격화된 목록에 맞춰 어떻게든 나의 일을 그 틀에 맞춰 끼워 넣으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과하게 포장된 부분이 있고, 물음표가 생기는 목록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씩 수정했고, 지금은 이해가 쉬운, 일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쉬운 단어를 활용하여 목록을 완성했다.


다이어리를 쓴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다이어리를 붙잡았던 것 같다. 이십 년을 넘긴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손장난, 낙서를 좋아하던 습관이 가장 좋은 방향으로 진화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억에 다이어리를 써야 한다고, 다이어리의 장점이 무엇인지 알려준 사람도 없는데, 이토록 오랜 세월을 자연스럽게 동고동락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딘가에 뭔가를 계속 끄적이기를 즐기던 남다르다면 남다른, 고유하다면 고유한 기질이 다이어리를 만나면서 빛을 발휘한 것 같다. 어딘가에 계속 뭔가를 끄적이는 행위가 생산성 또는 효율성으로 연결되었으니, 이만하면 운이 좋았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언젠가 지인으로부터 나만의 스트레스 해결법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질문이 끝나자마자 대답을 들려주었다.

"글쓰기. 스트레스 풀 때도, 기분이 좋아서 날아가고 싶을 때도 글을 쓰고 나면 많은 부분이 해결되었어요."

상대방은 어떤 맛도 느껴지지 않을 수 있는, 하지만 내게는 순도 백 퍼센트의 진심이 담긴 답변이었다. 그때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글쓰기로 그게 가능한지 호기심이 일어난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날, 스트레스 해결에 관한 질문이었기에 나는 '글쓰기'라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만약 그때 조금만 질문을 다르게 했었다면 나의 대답은 바뀌었을 것이다. 만약 어떤 것을 하면 열정이 솟아나는 기분이 느껴지는지 물어왔다면, 나는 '다이어리 쓰기'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물론 이번 대답에도 상대방의 표정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설마? 그럴 리가? 하지만 이번에도 순도 백 퍼센트, 진심이다.


나는 다이어리를 쓸 때, 일정을 점검하거나 계획을 세우기 위해, 혹은 해낸 일을 다이어리에 체크하면서 이런저런 지도를 완성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추상적인 계획이 구조화를 통해 맥락을 가지기 시작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땅에 발을 디디고 있음을 확인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짧은 시간이지만 몸 안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생성되는 기분이 느껴진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를 적어내려갈 때는 창조성이 발현되는 것 같은 느낌에 움츠리고 있던 에너지가 한껏 기지개를 펼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정말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다이어리를 쓰는 것이 어렵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다이어리를 쓰는 것이 논다는 표현해도 될 만큼 즐겁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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