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1도 모르지만

by 윤슬작가

어제 낮에 잠깐 살펴본 기사 때문에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 소식이었는데, 기사보다 눈에 들어온 것은 현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이었다. '왜 저렇게 사람이 없지?' 하필이면 어제 독서모임이 있는 날이었고, 그것도 하필이면 지정도서가 <타인의 고통>이었다. 아침부터 <타인의 고통>을 다시 읽던 터라 더욱 그랬을 수도 있다. 화상 연설을 지켜보는 국회의원이 5,6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왜 저렇게 사람이 적지?'

'위기에 처한 나라의 대통령이 도움을 요청하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여야 했지 않을까?'

'부정적인 답변을 줄 수밖에 없어 참석하지 않은 걸까? 적어도 성의는 보여야 했지 않았을까?'

''전쟁을 겪는 당신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나누고 싶어요'라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나 다를까, 늦은 밤 비슷한 상황의 또 다른 기사가 올라왔다. 좌석을 꽉 채운 미국, 일본 모습을 비교한 기사였다. 빈자리가 없는 것은 물론, 젤렌스키 대통령의 용기와 연설에 대해 기립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아쉬움이 생겨났다. 왜 우리는 조금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까?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 타인의 고통 p.154"


<타인의 고통>에서 수전 선택은 연민을 얘기한다. 그리고 연민에는 우리의 무고함이 숨어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무고함을 증명하려는 마음을 떠나, 연민조차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기사를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쉽고, 또 아쉬웠다.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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