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죽 한 그릇과 해방일지

by 윤슬작가

연휴를 끝내고 신나게 달려가도 시원찮은 상황에서 어쩌다 찐하게 고생을 했다. 음식이 잘못된 것 같지는 않다. 다른 가족들 모두 똑같은 음식을 먹었지만 문제가 생긴 사람은 없었다. 차량 이동이 조금 있었다고 해도 결정적인 요인은 되지 않을 것 같다. 피곤이 누적되었다 싶을 때, 일부러 휴식시간을 가졌고, 너무 늦게 잠자리에 들지도 않았다. 새벽까지도 멀쩡했다. 문제는 8시 30분을 넘기고 나서부터였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사무실에 출근을 했을 때였다. 갑자기 속이 좋지 않으면서 계속 구역질이 올라왔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돌도 씹어 먹을 수 있는 위를 가졌는데, 어찌 된 일인지 심상치 않았다.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기 시작했고, 책상에 앉아있는데 계속 식은땀이 흘렀다. 한 시간쯤 흘렀을 때,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우선 집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계속 구역질을 해서인지 온몸이 힘이 빠져 몸을 움츠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집에서도 몇 번 들락날락 하기를 반복했다. 힘이 빠져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그러면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2시간쯤 흘렀던 모양이다. 저절로 눈이 떠졌고, 그러면서 갑자기 배가 고프다는 인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뭔가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뜻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괜찮아졌으면 이제 일어나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출근하자마자 해결할 거라고 체크해두었던 목록이 떠올랐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넘어진 김에 좀 더 쉬어가자'라고 꼬드긴 마음이 문제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유튜브를 열었다. 이왕 누워있는 것, 조금 도움이 되는 영상을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지만 자판은 다른 글자를 두드리고 있었다.


"나의 해방일지"


의식적으로 해내는 어떤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는데 마구마구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싶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해방'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인지, 주변에서 들려온 소문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해방일지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누워서 한 시간쯤 해방 타운에 입주해서 미정과 구자경, 창희, 기정, 그리고 그들의 추앙 일기를 지켜보는 시간을 가졌다. 배꼽시계는 놀라운 힘을 가진 게 분명하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더니, 급기야 냄비에 숟가락으로 밥을 두 숟가락 툭 털어 넣은 후 뻐금뻐금 물이 졸아드는 풍경을 지켜보게 만들고, 기억력까지 회복시켰는지 된장을 꺼내 찍먹하도록 유도하더니 흰죽 한 그릇을 뚝딱 비우는 사건을 완성했다. 방금 전까지 비실거리며 누워있었던 사람이 말하기에 뭣할 정도로 너무 잘 먹었다. 물론 그 순간에도 유튜브에서는 '나의 해방일지'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나의 해방일지에 대한 짧은 소개 글이 인상적이다.

"견딜 수 없이 촌스러운 삼 남매의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운 행복소생기"

비워진 죽 그릇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에 슬쩍 나의 이야기를 얹어본다.

"견딜 수 없이 촌스러운 윤슬의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운 일상소생기"


추앙으로의 열망. 추앙으로부터의 해방.

잠깐이었지만 '나의 해방일지'를 보는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미정과 구자경, 그리고 창희와 기정. 구자경보다는 구씨가 더 친근한 것은 아직 전편을 제대로 못 봐서이겠지. 변신을 꿈꾸는 그들에게서 나를 본다. 몸살도 아니고, 장염도 아닌 것 같은, 약간은 견디기 힘든 결과를 받아들고 고민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머릿속으로는 괜찮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만, 절대 괜찮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이렇게 한방 터트리고야 말았다. 죽 그릇을 싱크대로 옮겼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유튜브를 껐다. '나의 해방일지'와 흰 그릇. 이 조합도 괜찮은 조합이었다. 추앙으로의 열망, 추앙으로부터의 해방. 두 세계를 오가는 것은 미정, 구씨, 창희, 기정만이 아닌 것 같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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