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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날락하는 이유

by 윤슬작가

집안 행사에서 자유로운 며느리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특히 5월에는 아버님 제사가 있어서 5월에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그러니까 외부 강의 또는 특강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할 때부터 미리 조정을 한다. 4주나 8주처럼 조금 길게 진행해야 하는 경우는 요일 자체를 바꾸든지, 아니면 해당하는 주에는 수업 진행이 어려울 것 같다고 미리 양해를 구한다.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수업의 경우는 그나마 조금 낫다. 2주, 3주 전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다른 요일로 옮길 수 있는지 의견을 구한다. 그렇게 조정해서 가능한 평일에 진행하려고 하지만, 평일도 일정이 빠듯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주말까지 이어진다.


지난 주가 딱 그랬다. 그러다 보니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계속 출근하는 일이 벌어졌다. 몸에 조금 무리가 온다 싶은 상황에서도 쉴 수가 없어 계속 일을 했더니 일요일 밤에는 마음이 복잡했다. 누구 얘기처럼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나?'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이런 기분을 주말을 마무리하고, 월요일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노트북을 펼쳤다. 생각나는 대로, 마음대로 종이를 채워나갔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나'를 데려와 어떤 검열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얼마 동안 자판을 두드렸을까. 한참 동안 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을 밖으로 쏟아내고 나니, 조금씩 호흡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평소 나는 '글쓰기는 글을 쓰는 사람을 위해 가장 먼저 쓰인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일요일 밤이 그랬던 것 같다.


글쓰기, 형식과 상관없이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보이지 않는 선이 만들어지면서 보호를 받는 것 같기도 하고, 나를 위협하는 어떤 것들과 분리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때의 기분은 여러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산꼭대기 정상에 있는 작은방, 정면과 뒤쪽으로 창문이 있고, 그곳을 통해 바람길이 만들어져 시원한 바람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것 같은, 그늘진 나무 벤치 아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바람 소리인지 파도 소리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그렇다 보니 짧은 시간이라도 글을 쓰고 나면 내 안에서 뭔가 뚝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다.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어떤 것에 푹 빠져 몰입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다.


매번 그랬던 것 같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와 글을 쓰고 나올 때의 표정이 달랐다. 표정만 다른 게 아니라, 말투도 달랐다. 처음 들어갈 때의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 완벽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감사함을 떠올릴 정도의 공간은 생겨났다. 나의 감정이 온전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안도감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식으로든 밖으로 드러냄으로 인해 생겨난 혜택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판단의 대상이 되거나 부정당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받아들여지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되지 않는 것은 하얀 종이 위에 남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이지 싶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날락하는 이유가.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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