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과 연계하여 몇 년째 창의적 체험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독서 감상문을 중심으로 글쓰기에 대한 재미, 유익함을 설명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쓰기에 대한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꼭 그만큼의 크기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글쓰기가 만만해질 수 있도록, '어 나도 쓸 수 있네'라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개인의 특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잘 쓰는 아이는 조금 더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해 주고,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큰 아이는 몇 줄이라고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내가 하는 수업의 목표이자 방향이다. 가능한 최대한 따듯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능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경험하게 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밖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배려하기위해 노력한다. 백 퍼센트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아니었다.
보통 창의적 체험활동을 하는 날에는 담임 선생님은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많다. 가끔 자리를 함께한다고 해도 수업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나에게 맡긴 채, 보조자 역할을 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친구에게 필요한 것을 묻는 정도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자리를 함께한 것은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글쓰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갑자기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전부 열중 쉬어!"
"모두 펜 놓고, 두 손 책상 위로!"
"국어 시간에 배운 거 모두 잘 기억하고 있지?"
"수업 시간에 얘기해 줬잖아. 배운 대로 하면 되는 거야"
"아직 빈 종이로 있는 사람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수업 마쳐도 남아서 끝내고 가야 돼!"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금방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지, 이 낯선 풍경은. 나를 도와주겠다는 마음에서 하는 행동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불행하게도 도움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방해를 받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얻는 것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일 거라는 생각으로 불편한 느낌을 감춘 채 아이들의 글쓰기를 지도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또 벌어졌다. 몇 줄밖에 적지 못한 채, 연필을 계속 만지작거리는 아이였다. 그 아이에게 "네가 쓸 수 있는 만큼, 생각나는 만큼 적으면 돼"라고 얘기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담임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고 있었다.
"너는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선생님이 하라고 하는 대로 하지 않는구나. 얘기를 들었으면 열심히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너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구나. 수업 끝나면 남아서 책 다 읽고 줄거리까지 다 쓰고 가도록 해!"
'아!'
굵은 눈물이 순간적으로 종이 위로 떨어졌고, 놀란 아이가 서둘러 눈물을 훔쳐냈다. 아무도 모르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래서 나도 모른 척 앞쪽으로 몸을 이동했다. 어떤 모습도 못 본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그 아이의 평소 모습을 나는 알지 못한다. 선생님과 아이 사이의 어떤 어려움과 사연이 있는지도 정보가 없어 단정 짓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눈물은 슬펐다. 눈물을 본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재미있고, 신나는 창의적 체험활동인데, 재미없고 신나지 않은 체험활동을 만들어준 것 같아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쓰였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물음표가 머리 위를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