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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작가 Jun 29. 2022

"아이, C!"

남편이 가끔 지갑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얘기하면 그럴 때마다 얘기했던 것 같다. 어디에 두었는지, 맨 마지막으로 사용한 곳이 어디였는지 천천히 한번 생각해 보라고. 급하게 찾아서 잘 못 찾는 것일 수 있다고. 하여간 남편은 신기하게도, 아닌 기억력이 엄청 좋은지 그때마다 지갑을 찾아냈다. 그런데 남편에게 했던 말을 내가 나에게 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요일 오후였다. 물건을 산 후 계산을 하기 위해, 당연히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가방에서 지갑을 찾고 있었다. 검은색에, 거기에 사이즈가 작아 금방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손을 넣어 여기저기 휘저었다. 그렇지만 구석구석 손을 넣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이럴 리 없는데...'


급한 대로 핸드폰으로 결제하고,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뒤집었다. 정말 말 그대로 뒤집었다. 핸드크림, 세정제, 명함, 자동차 키를 포함한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물건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어디에도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마지막으로 사용한 곳이 어디인지, 최종적으로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지갑을 가지고 움직인 곳은 다이소와 카페였다. 두 곳에서 모두 지갑을 잘 챙겨온 것 같은, '거기는 아니지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서둘러 다이소를 찾아가고, 카페를 방문했다. 어디에서 지갑은 없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지갑을 찾으면 연락해달라고 번호를 남기고 돌아설 때였다.

'이거... 정말 잊어버린 거야? 정말?'


보통은 이렇게 잠시 잃어버렸다가 금방 되찾은 적이 있어 '잊어버렸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마지막으로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을 서글프게 했다. 카드 사용내역을 살펴봐도 더 이상의 추가 결제는 없었다. 그리고 다이소에서 나올 때도, 카페에서 나올 때도 분면 손에 있었던 느낌이 있어,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는 말만 계속 반복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는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집안을 시작으로, 차 안, 남편의 차, 사무실 책상까지 모두 살펴보았다. 하지만 확인하면 확인할수록 '잃어버렸다'라는 사실만 점점 더 분명하고 선명하게 다가왔다. 혹시라는 생각에 떠오르는 곳이 있어 '에이 설마'하는 반신반의하며 뒤적였지만 역시나였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그제서야 지갑 안에 뭐가 들어있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궁금해지기보다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운전면허증, 신용카드 4장, 행복 페이 충전카드, 현금 약 9만 원, 상품권 10만 원... 하나씩 떠올릴 때마다 속상함이 밀려왔다. 카드는 새로 만들면 된다지만, 운전면허증도 재발급 받으면 된다지만, 현금과 상품권은 방법이 없었다. 남편이 곧잘 지갑을 찾아낸 것처럼, 남편이 위로라면 건넨 말처럼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거야'라는 말에 '혹시나'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못한 채, 월요일 아침 다시 행적을 쫓았다. 마음이 급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받아들여야 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과 짱짱하던 기억력이 느슨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잊어버린 거야? 가 아니라 진짜.. 잊어버렸어. 진짜...로'


그렇잖아도 조금 바쁜 월요일 아침이, 덕분에 조금 더 부산스러웠다. '어쩔 수 없잖아. 받아들이자',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잃어버렸잖아','잊어버리자. 계속 생각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잖아'라는 말로 나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봤지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애써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척 카드사에 분실신고와 재발급 신청을 했다. 따로 은행에서 발급해야 되는 것이 있어 필요한 서류를 알아본 다음, 인터넷으로 운전면허증 재발급 신청을 할 때였다. 뜬금없이 현금과 상품권 생각이 났다.


"아이, C! 도대체 어디서 잊어버린 거야!"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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