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단"라는 부사를 즐겨 사용하는 편이다.
일단 한번 해보고.
일단 한번 가보고.
일단 한번 시작해 보고.
일단 한번 먹어보고.
글로 옮겨놓고 보니 "일단 한번"이라는 세트를 좋아한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일단 한번"은 나에게 있어 몸을 한 걸음 이동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굉장한 자신감을 가지고 몸을 이동한다기보다는 습관적이거나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데, 가슴이 설레는 일에 대해서는 머리보다 몸이 우선 반응을 보인다. 아니면 머릿속에서 이성적으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라는 말하는 것이 듣기 싫어서 나오는 반사적 행동일 수 있다. 학습의 결과일 수도 있겠다. 바람을 가르고 몸을 이동했을 때, 변화라는 것이 생겨났고, 그런 변화 덕분에 삶이 제법 흥미롭게 진행되었음을 인정한다고 해야 할까.
"일단 한번"을 통해 배운 것이 많다. 어떤 일을 할 때 가슴이 뛰는지, 무엇에 마음이 동하는지,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지, 그렇지 않은 지 내밀한 부분까지 일단 한번 해 본 것들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속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손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함께 새겨 넣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에게 자주 조언해 주는 편이다. "일단 한번 해보세요"라고.
하지만 '일단 한번 해 본다는 것'과 '좋은 결과'를 동의어로 이해하지는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그러니까 "일단 한번 해보세요"라는 말에 대해 무엇이든 시작만 하면 된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분이 더러 있었는데, 현실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예상과 빗나간 결과는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고, 일단 한번 해본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실패로 보이는 일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성공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니까 "일단 한번 해봐서 모두 성공이라면 세상에 어려운 일이 있을까?"라고 되물을 수 있는 내공도 필요한 셈이다. 두루뭉술한 망치로 두더지를 잡겠다고 여기저기 때렸던 예전에 비해 '일단 한번 해보는 것'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최소한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두려움과는 다른 것 같다. 스스로에게 조금 더 날카롭고 디테일한 시선을 요구하는 거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그런 과정을 지나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그땐 두 눈을 감고 씩씩한 목소리를 나에게 들려준다.
"일단 한번 해볼까?"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