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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사, 엄마 그리고 5분 명상

by 윤슬작가

친정엄마의 손에 이끌려 단양에 있는 구인사를 따라다녔다. 보통 방학 때 이뤄졌고, 4박 5일 동안 법당에서 엄마가 기도를 하는 동안, 나는 그 옆에 앉아 종일토록 꾸벅꾸벅 졸았다. 종교라는 것도 알지 못했고, 기도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저 그곳에서 있는 동안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것을 밥을 먹는 시간이었다. 법당에서 식당까지 제법 먼 거리였지만, 코끝이 시리고, 찬바람에 온몸이 바들바들 떨었지만, 짧은 시간 안에 밥을 먹어야 했지만, 그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간식이 없는 터에 절밥은 꿀맛이었다. 거기에 밥을 먹고 와서 완전히 다리를 펴지는 못하지만, 공식적으로 낮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 나는 몇 시간을 버텼다.


다시 기도 시간. 모두 정좌를 하고 두 눈을 감고 기도를 시작했다. 짐승이 우는 것 같은 목소리도 있었고, 장군님처럼 쩌렁쩌렁한 목소리도 있었다. 산들바람처럼 간질간질한 목소리도 있었고, 또렷하고 분명한 목소리도 있었다. 간혹 스님의 죽비소리에 놀라 슬그머니 눈을 떠보면 몇 줄 앞사람의 등에 무언가가 스쳐가는 모습이었다. 잠결인지, 꿈결인지 비몽사몽 한 자세로 어떻게든 버티려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다행히 스님은 단 한 번도 내게 죽비소리를 선물하지 않으셨다. 어른들을 따라 똑같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늘 혼자 궁금했다. 기도할 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엄마는 무엇을 기도하고 있는지,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은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 생각을 하며 두 눈을 감고 혼자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떠올라 그 안에서 헤엄치기도 하고, 그것도 시원찮으면 이도 저도 아닌 무중력의 상태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가는 날, 오는 날을 제외하면 2박 3일인데, 어떻게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의아하다. 구인사를 가는 것, 오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울산역에서 출발해 단양역까지 비둘기호를 타고 4시간, 5시간 정도를 달려야 했고, 단양역에서도 다시 구인사까지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갈 때도 고생, 올 때도 고생인 그 길에서 힘들다고 할만한데 어떻게 된 일인지 매번 나는 엄마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더 희한한 것은 스무 살이 넘은 후부터는 혼자 그 길을 다녔다는 것이다. 구인사를 다닌 기간을 따지면 삼십 년은 훌쩍 넘은 것 같다. 그렇다고 대단한 불교 신자는 아니다.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불교'라고 대답하지만, '불교'가 전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기독교든, 천주교든, 마음의 평온함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그 어떤 종교도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내가 엄마에게 고마운 것은 따로 있다. 내게 불교를 알려주었다는 것을 넘어, 기도를 해서 소원성취를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넘어, 어린 나이에 자연스럽게 나를 명상의 길로 인도했다는 것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만히 두 눈을 감고 정좌를 한 다음, 5분 정도 명상을 한다. 언젠가 나의 행동을 두고 '어? 내가 기도를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기도라기보다는 명상의 시간이었다. 부처님을 찾거나, 소원을 빌면서 이뤄달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말은 없었다. 그저 복식호흡을 하며 호흡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오가는 것을 지켜보고, 감정이 넘실대며 춤추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렇게 5분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나면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따스함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는데, 그 느낌이 좋아 거의 매일 하고 있다. 그런 다음,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후 일어설 때면 가끔 엄마가 생각난다. 구인사 법당이 생각나고, 엄마의 목소리가 생각나고, 그 옆에서 꾸벅꾸벅 졸던 어린 나가 생각난다.


from.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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