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든 다이어리가 있으면 지나치지를 못했다. 표지가 예쁜, 구성이 새로운, 특이한 소재의 커버,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는 것까지 다이어리를 구매해야 할 이유는 언제나 충분했다. 그러던 내가 요즘은 똑같은 다이어리를 몇 년째 쓰고 있고, 내지만 교체하고 있다. 지인이 종이 원단으로 만든 다이어리를 선물해 주었는데, 무겁지 않아 가방에 넣어 다니는데 이만한 것이 없어 보인다. 색깔은 내가 좋아하는 올리브그린이다. 거기에 실로 매듭을 지어 완성한 ’handmade‘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는데, 개성이 느껴져 시간이 있을 때마다 펼쳐 쓰다듬기를 즐긴다.
다이어리를 사는 것이 취미였던 사람이 이렇게 바뀐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예쁜 다이어리, 새로운 다이어리, 아기자기한 다이어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용하기에 편하면서 기록과 관리가 동시에 이뤄지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 같다. 책을 읽다가 발견한 글을 필사하거나 메모를 남길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업무를 기록하고, 일정을 관리할 수 있으며 따로 분류해서 보관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어 보인다. 다른 것들은 부수적인 것이 되었고, 부수적인 것은 때가 되면 금방 사라졌다. 다이어리가 감성적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그러니까 드디어 다이어리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예쁜 다이어리를 몰라본다거나, 신박한 다이어리에 눈길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멈추기는 한다. 하지만 딱 거기에서 끝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다이어리에 대한 시각을 조금 바꿔보라고. 소유가 아니라 활용의 측면에서 접근해 보라고.
그렇다면 다이어리를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우선순위를 점검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주변에 보면 '나는 다이어리에 쓸 게 별로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하지만 그날 해야 할 것에 대해 자잘한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적어보면 의외로 많다.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으면서 그때그때 해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렇게 되면 놓치는 경우가 생겨난다. 이럴 때 다이어리에 체크해두었다가 하나씩 지워나가면 성취감도 맛보고, 놓치는 경우도 줄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이어리에 적다 보면 의외로 ’할 일‘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된다. 물론 이때 긴급한 것인지, 중요한 것인지, 오늘 해야 하는 것인지, 당분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구분 작업이 명쾌하게 이뤄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매번 덧붙이는 말이 있다. 우선순위, 인생의 핵심 가치를 떠올리면서 다이어리에 해야 할 일을 적고 점검해 보라고. 그렇게 하면 오늘 해야 할 것과 내일 해도 되는 것이 구분되고, 당장 긴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을 챙겨 일상에 반영할 수 있게 된다고. 새해 또는 연말, 특별한 날에 다이어리를 사는 것도 좋고, 기념으로 다이어리를 바꾸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다이어리를 새롭게 장만하기에 앞서 분주해지는 마음에게 물어보았으면 좋겠다.
"왜 다이어리가 필요해졌지?"
“꼭 새 다이어리를 바꿔야 하는 걸까?”
“나는 다이어리를 통해 무엇을 기록하고, 관리하고 싶은 걸까?”
"내 인생의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