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이어리에 최대한 상세하게 기록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너무 피곤해서 낮잠을 잔 시간, 친구와 모임을 가진 시간까지 최대한 정확한 기록을 남긴다. 간략하게 흔적만 남기기도 하는데 어떤 날에는 행동 자체를 설명하는 글을 남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너무 피곤해서 낮잠 잤음' 또는 '친구와 함께 맛있는 저녁, 대화, 힐링 시간'처럼. 하다못해 책상 정리, 화장실 청소라고 표시하기도 하는데 해당 시간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발자국을 꾹꾹 눌러 담는다. 일을 한 시간에 대해서도 그냥 ’일‘이라고 적지 않는다. 업무 자체를 상세하게 나타내는데 블로그 포스팅을 했으면 블로그 포스팅, 채널의 글을 수정하거나 업로드했으면 채널 업로드 또는 수정, 아침 독서시간에 관한 것은 독서경영, 표지 시안에 대해 회의를 했으면 디자인 검토라고 기록한다.
이처럼 상세하게 적어놓으니,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도 다이어리를 펼치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법 정확하게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특별한 감정을 느낀 날에는 그 감정에 대한 설명도 있어 단순한 다이어리가 아니라 기록물이자 나의 역사가 된다. 내지를 교환할 수 있는 다이어리를 쓴 지 5년쯤 되어가는데, 내지를 모아놓은 바인더만 해도 벌써 세 권이다. 오랜 시간 공들여 책을 출간하는 기쁨만큼이나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담긴 다이어리는 책과는 또 다른 형태의 에너지를 내게 안겨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지만 교환해서 쓰는 다이어리가 여러모로 매력적인 것 같다.
언젠가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 분이 계셨다.
"작가님, 작가님 다이어리 한번 보면 안 돼요?"
"네?"
"뭔가 굉장히 많은 걸 적으시는 것 같아서요. 늘 궁금했어요. 무엇을 적으시는지, 왜 그렇게 꼼꼼하게 적으시는지..."
부끄럽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나의 실험자료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펼쳐 보여드렸다. 그렇다고 해도 괜히 신경이 쓰였는지 대단한 기록이라기보다는 성실한 기록이라는 말을 전하면서 몇 마디 덧붙였던 기억이 난다.
“저는 오늘이 중요해요. 오늘 어디에서 시간을 보냈고, 누구를 만났으며, 어떤 일을 했는지가 소중해요. 내가 선택한 사람, 사건, 행동 속에서 온전함을 느끼기를 원해요. 다이어리는 내가 나에게 보여주는 일일 보고서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나에게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 거예요. '오늘 하루 자발성을 발휘하며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놀았고, 열심히 쉬었으며, 열심히 사랑하면서 보냈어'라고 내 인생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거죠. 그렇게 하고 나면 마치 내 인생이 내게 미소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다이어리 쓴다고 얘기하면 거창한 목적이나 어떤 대단한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도 의미 있는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다. 거창하거나 대단한 목표 없이 일과를 기록하고, 오늘 하루 잘 보냈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는 용도로 쓰여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두루뭉술하게 쓰기보다 세밀하게 적으면 더 좋은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다이어리 쓰기, 5년 후, 10년 후의 목표 또는 계획이 없다면 일상의 기록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시작해도 충분할 것 같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