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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작가 Aug 19. 2022

한산: 용의 출현, 우리는 왜 이순신을 그리워할까?

"요즘 한산 영화, 재밌다던데?"


'한산: 용의 출현'에 대한 사전 정보는 없었다. 며칠 전 식당에서 결제를 하는데, 누군가 스치면서 했던 말이 들은 게 전부였다. 다만 한산도 대첩, 학익진이라는 것을 역사 시간을 통해 줄줄 외웠던 까닭일까, 아니면 연휴라고는 하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 때문이었을까, 약간의 다툼 이후 화해 모드를 타고 있는 남편의 제안 덕분일까, 8월 15일 광복절에 영화관을 찾았다. '한산: 용의 출현'을 만나기 위해.


영화를 보기 전부터 혼자 궁금했다. 제목이 왜 '용의 출현'일까? 


용이 지닌 상징성에 대한 생각으로 궁금증이 생겼던 것 같다. 거북선을 '용'에 비유한 것일까, 이순신을 '용'에 비유한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한산을 '용'에 비유하고 싶었던 걸까. 용은 역사적으로, 예술적으로, 관념적으로 수호천사라고 할 수 있다. 승천의 의미를 가진 용은 성공, 입신양명을 뜻했으며, 하늘에서 의(義)과 불의(不義)를 양쪽을 살피어 조화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곧 용의 출현한다는 것은 희망을 의미했다. 그런 측면에서 거북선이 만들어지는,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만나게 되는, 나라를 잃을 위기에서 벗어나는 희망을 전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한산:용의 출현'을 보고 나오면서 내린 개인적인 결론이다.


'한산: 용의 출현'은 초반부터 긴장감을 만들어내어 도무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첩보전. 일본과 조선의 수장들이 벌이는 두뇌 싸움, 나라와 나라가 벌이는 약육강식의 전쟁터, 마치 내가 한 몸이 되어 일본으로, 조선으로,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모두 목숨을 걸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영화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주 일차원적인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관람했다. 


'저 사람이 꼭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저 마음이 꼭 지켜졌으며 좋겠다'


다행스럽게도, 아니 예상했던 대로 '압도적인 승리'가 되었고, 몇몇을 제외하고는 살아남기를 희망했던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무엇보다 가장 내 마음을 편하게 했던 것은 이번 영화가 '노량'이 아니어서였다. 왜냐고? 너무 단순한 대답이 될 것 같다. 이순신을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학익진이 펼쳐지고, 눈앞에 승리가 다다랐을 무렵, 나대용이 등장하고 거북선이 등장하는 순간 그제야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평온한 기분으로 영화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아주 뜬금없는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지나갔다.


"왜 우리는 이순신을 그리워할까?"


나도 그렇지만, 사실 이순신을 국민적 영웅이다. 23전 23승의 장군이라서 그럴까, 조선을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라서일까? 이순신에 대한 신뢰감이 상당하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무엇보다 성공했기 때문에 기록에 남았고, 그것이 지금의 이순신을 만든 것이 분명하다. 만약 그가 성공하지 않았다면 그의 답답해 보일 정도로 우직한 모습이나 자신의 결단력을 믿는 모습은 자칫 위험한 인물로 남겨질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거든 그는 성공적인 전략을 세웠고, 그의 완벽하게 승리했다. 그것이 그의 모든 것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배경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단순히 성공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삶에 대한 태도에서 이미 그는 존경을 받을만한 여러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싶은 난중일기. 그는 이미 알려진 것처럼 전쟁 중에 자신의 기록을 남기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니까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일에 누구보다 성실하고 능숙한 사람이었다. 성찰을 바탕으로 담대함과 우직함을 발휘했다. 또한 그는 의義를 선택하고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의 선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위기가 기회라고 하지만 그것도 어느 수준의 얘기이다. 이순신이 맞닥뜨린 상황은 압도적이면서 탁월한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그만큼의 무게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두려움으로 피하기보다는 용기를 발휘했다. 조언과 충언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끝끝내 위대함의 길을 추구했다. 이것이 오늘날 '이순신의 리더십'을 이끌어내었고 '한산대첩'이라는 역사전 성과의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우리는 이순신을 그리워할까?"


는 '희망'이라는 키워드를 대답하려고 한다. 난세亂世에 영웅이 난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보면 난세亂世가 아닌 적이 별로 없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지만 삶은 고통이라는 말처럼, 일상은 어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너무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단어보다 '지금도 쉽지 않은데,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많아지는 세상'이라는 말을 더 자주, 많이 인용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추구하게 된 것 같다. 위기를 극복하고 싶다는 희망,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희망, 믿음을 지키고 싶다는 희망을 확인할 수 있기를. 그 지점에 이순신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번에 우리 이 장군님이 너무 말씀이 없으신 것 같아..."

"그렇지,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더 그랬던 것 같아..."


남편과 함께 영화관을 나올 때 주고받은 말이다. 소통, 공감의 키워드로 보았을 때 어쩌면 이순신은 그리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한 번 더 돌려 생각해 보면, 소통과 공감을 표현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내는 위기 상황이었다면 그것이 사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산,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그러니까 10번쯤 생각해 보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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