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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작가 Jul 15. 2022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몇 번 마주친 것 같다. 아침 출근길에도 보았고, 8시쯤 퇴근할 때도 보았다. 아주 늦게는 11시가 훌쩍 넘긴 시각에도 보았었다. 초점이 없는 시선,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이 드는지 몸을 달달 떨고 있는 강아지. 그래도 처음 보았을 때는 두어 걸음 옮기는 모습이었다. 냄새를 맡는 시늉 비슷한 것을 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내게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어떤 종인지를 알지 못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그 강아지를 아파트 계단 앞에서 본 그날부터 지금까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만약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영상으로 옮길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거의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을 만큼 또렷하다. 하지만 실은 강아지보다 강아지를 안고 있던, 한 걸음 뒤에 있거나 한 손에는 휴지를 둘둘 말아 서 있는 강아지의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더 눈에 들어왔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강아지, 그다음에는 아주머니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10년도 더 되었다. 친정에는 '꼬봉'이라고 부르던 시추 강아지가 있었다. 막냇동생은 자신이 '막내'라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자기 밑에도 부하(?) 같은 느낌으로 누군가가 있었으면 했던 모양이다. 그러고는 자신이 데려온 강아지에게 '꼬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장난 가득한 그 이름이 좋았던 우리 모두 15년 가까이 열심히 불러주었다. 한쪽 귀에 계속 염증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몸 안에 종양이 생기고, 걸음걸이가 이상해지기 전까지.

꼬봉이는 나를 비롯하여 남동생들이 모두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엄마의 몫이 되어버렸다.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았던 엄마였지만, 다행히 꼬봉이만큼은 예뻐해 주었다. 씻기고, 먹이고, 패드를 갈아주고, 아침마다 산책을 겸한 배변활동을 도와주는 것까지, 친정엄마는 거부감 없이 꼬봉이 엄마 역할을 수행해 주었다. 예방접종에서부터 미용까지, 아이를 키우는 것 같다며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비쳐도 다음날 아침이면 "꼬봉아 산책 가자"라며 함께 마당을 나섰다. 그런 꼬봉이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했다. 몇년동안 병원을 자주 출입하는가 싶더니 머리를 비롯하여 다리, 귀에 종양이 생겨났고, 의사는 다리를 절단하는 것에 대해 얘기를 했다. 아직 그보다는 차라리 안락사가 더 나을 수 있다고 권유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날부터 엄마는 몇 날 며칠을 울었다. 떨어져지내는 자식들과 몇 번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현명하고 좋은 선택을 내리고 싶었지만, 결정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우리는 조금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었다. 꼬봉이를 마지막으로 데려다주는 날, 우리는 일부러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 바랐다. 다음 날 엄마와 통화할 때가 기억난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울었다는, 마지막 가는 길 깨끗하게 씻기는데 그날따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더라는, 병원까지 어떻게 갔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우리 꼬봉이 잘 보내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꼬봉이를 보내는데 도저히 팔이 떨어지지 않더라는, 집으로 돌아와 자식을 잃은 어미처럼 이불 덮고 계속 울었다는 얘기를 숨죽여 우는 목소리로 들었을 뿐이다.

아파트 계단 앞에서 만났던 강아지와 아주머니가 내게는 마치 꼬봉이와 엄마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제법 오랜 시간이 흘러 가물가물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내 안에 다른 형태로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게 나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가끔 어디를 가다가 시추를 만나면 '우리 꼬봉이 닮았네'라고 말하는 엄마를 보면, 아직 꼬봉이를 완벽하게 떠나보내지 못한 것 같다. 그 마음이 시선을 붙잡았던 것 같다. 저 강아지가 떠나고 나면, 아니 저 강아지가 떠나고 나면 언제쯤 아주머니는 괜찮아지실까, 아니, 엄마처럼 평생 잊지 못하시는 건 아닐까. 강아지와 아주머니를 볼 때마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마음이 무거워진다.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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