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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작가 Aug 25. 2022

괜히 검지가 짧아가지고는

"검지가 엄지보다 짧네. 엄지가 기네?"

한참 동안 나의 발가락을 들여다보던 엄마가 무심하다는 듯, 그렇지만 아쉬움이 한가득 느껴지는 표현을 내뱉었다. 


처음에 엄마가 내 발가락을 살펴볼 때에는 별로 호기심을 느끼지 않았다. 아니 '엄마가 왜 내 발가락을 보고 있지?'라는 의문에 때가 끼었나 생각하고는 손가락으로 발가락을 몇 번 쑤신 게 전부였다. 하지만 시간이 제법 흘렀는데도 엄마의 시선에는 변화가 없었고, 고개를 계속 이리저리 갸우뚱거렸다. 그러더니 결국 발가락을 엄마 앞으로 가져가는가 싶더니, 이내 뜬금없는 말을 하늘을 향해 내던졌다.


"왜? 엄지가 길어? 검지하고 비슷하지 않아?"

"아니, 검지가 짧아.. 느거 아버지가 더 오래 살겠네..."

"?"

엄지와 검지가 어떻게 아버지와 연결되는지 도무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세상에 이런 셈법이 존재하나,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는 전설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는 검지가 길고, 엄지가 짧다고 한다. 그래서 할아버지(엄마가 아버지인 셈)가 일찍 돌아가셨다고 한다. 사람들이 엄지와 검지 길이를 두고 누가 더 오래 살고, 먼저 죽는지를 예측할 수 있는데, 제법 정확도가 높다는 것이다. 실눈을 뜨고 엄마에게 물었다.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를. 엄마가 대답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얘기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말과 함께 '그러면 자식들 발가락 모두 가져다 놓고 살펴봐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되물었더니 엄마의 대답은 더욱 전설 속에 나올법한 대답을 했다.


"맏이만 보면 된다고 하드라"

"?"

"엄마, 그런 거 잊어먹고 살아. 뭐라고 하드라... 이런 거 기억하지 마."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엄마와 나는 TV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TV에는 서해의 수온이 높아지면서 물범의 개체 수가 줄어들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전날 밤부터 오늘 새벽, 그리고 지금까지 조금 거짓말 보태서 여섯 번을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니 아나운서 멘트를 외울 정도였다. 다음에 무슨 말을 하겠구나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부터 아나운서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공기가 확 달라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물범이 사라지고 그곳에 어제저녁에 들었던, 저녁을 먹는 동안 나지막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던 엄마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빠와 함께 가는 부부 동반 계중에 가장 친하게 지냈던 분이 있었거든. 며칠 전에 그 집의 아줌마가 돌아가셨어. 몇 달 전만 해도 아무 말이 없었고... 장례식장을 다녀왔는데,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그 아줌마하고 엄마하고 잘 통했거든... 그 아저씨는 얼마나 사람이 좋은데... 그사이 얼마나 말랐는지.... 엄마하고 제일 친했는데, 나이도 몇 살 차이 안 나는데... "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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