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두 아이가 양쪽 어른을 모두 만난 것은 설 이후 처음이었다. 'K-고등학생'으로 살아가기 쉽지 않다고 얘기하는 첫째, 일명 나라를 지켜준다고 널리 알려진 중학교 2학년인 둘째, 두 아이의 학원 스케줄이 바빠지면서 자연스럽게 남편과 나, 둘만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렇게 지내다가 추석을 앞두고 두 아이 모두 오랜만에 만나게 될 할아버지, 할머니, 사촌들의 소식을 궁금해하며 설레임 가득한 모습이었다.
"정말 많이 컸네!"
"오랜만에 봤더니 몰라보겠어!"
"이게 누구야? 이만큼 컸어?"
오랜만에 만난 어른들이 말을 건네며 많이 컸다고 얘기해 주는 모습이 싫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주 가끔 "공부는 잘하고 있지?"라는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이 날아오기도 했지만, 그보다 자신의 변화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즐거움이 컸는지 명절 내내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주 가끔 과한 농담을 던지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 두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에겐 관심이 필요하구나!'
'관심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그 안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사람이구나!'
그렇지만 이런 생각과 조금 다른 관점에서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추석과 같은 명절에 친척이나 어른을 만나기 두렵다고 얘기했다. 그 사람은 어른들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럽다고 했고, 자기중심적인 조언이 불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했던 말이 '경계가 있는 관심과 조언'이었다. 양쪽 모두 안전할 수 있는 만큼의 관심을 표현하고,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분위기라면 얼마나 좋을까였다.
'경계가 있는'이라는 말을 쉽게 접근하면 '적당한'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적당한 거리, 혹은 건강한 거리 정도? 하긴'적당한'이라는 단어만큼 어려운 게 또 있을까 싶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가 아니라 양쪽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거리를 알아차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노력마저 포기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왜냐하면 결국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우리는 '타인'이며, '잘 모르는 당신'일 테니까 말이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