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느 정도 숙달된 조교의 모습을 보이지만, 아주 가끔 내 머릿속에서 엉뚱한 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다.
"이왕 하는 거 오늘 당겨서 하면 어때?"
"더 빨리, 더 많이 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잖아?"
"오늘 더 하고 나면, 내일 더 많이 하니까, 결과적으로 더 나은 거잖아?"
하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전혀 엉뚱한 소리는 아니다. 예전의 내가 아주 자주, 많이 되뇌었던 것으로, 지금은 강도와 빈도가 줄어들어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어떻게 하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그 고민을 참 많이 했다. 그래서 무리한 것도 사실이다. 어떤 날에는 4시간밖에 잠을 못 잔 상태로 걸어 다녔고, 두 눈이 충혈된 상태에서 연거푸 세수를 했던 날도 있다. 양볼이 패인 상태가 되어 졸지에 다이어트했냐는 소리도 여러 번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혼자 속으로 '참 열심히, 잘하고 있어'라는 격려 메시지를 날렸던 것 같다. 상황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것도 있었지만, 결승점이 정해진 단거리 마라톤 선수처럼 나를 채찍질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과정적으로 성과는 있었다. 하지만 양날의 검이라고 했던가. 얻은 것이 있었다면 잃은 것도 있었다. 건강 관리에 신경 써야겠다는 의사선생님의 조언이 있었고, 무엇보다 마음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어졌다. 그렇잖아도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데, 조급함이 보태지면서 내가 나를 괴롭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자꾸 벌어졌다.
그랬던 내가 사뭇 달라진 것을 스스로 느낄 정도이다. 내일 걱정을 오늘로 가져온 사람, 미래에 생겨날 일에 대한 시나리오를 생각해 내어 가장 좋은 결말을 만들고 싶어 했던 사람, 그런 사람이 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다이어리를 통한 일정, 시간관리를 명확하게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 같다. 업무 리스트를 나열하고, '모두 해내겠어'라는 방식이 아니라 '관리'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이다. 업무를 확인하고, 우선순위를 통해 다이어리에 체크하면서 시간을 확보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서열이라는 것도 생겨났다. 긴급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확인되었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게 된 것이다. 소중한 것과 소중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행하던 것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그동안 추상적으로 '이런 것 같아'라고 여겼던 행동에 대해 구체적인 이유를 묻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버릴 것과 끌어안을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하루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더 많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하루라도 당겨 결과를 빨리 만나고 싶어 했고, 결과를 통제하여 내가 원하는 결말을 만들어내려고 매달렸다. 그러니까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가 아니라 '내일 할 일을 오늘로 가져오자'였던 셈이다. 그런데 그것이 결코 건강한 방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나만의 원칙, 기준이 생겼다. '오늘 일은 오늘, 내일 일은 내일. 일주일 뒤의 일은 일주일 뒤에 하자'라고. 다이어리라는 비서가 있으니, 크게 어렵지 않아 보였다. 내일의 일은 내일에 맡겨두고, 그저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해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현재, 상당히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