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에서든 "좋아"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긍정성을 유지하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지 않는 것도 쉽지 않다. 마음이 급해져 순식간에 예상하지 못한, 혹은 부담스럽다고 여겨지는 일이 벌어질까 걱정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의 경험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경험에 발목이 잡히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혹시,' 또는 '어쩌면'하게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되뇌기를 반복한 덕분일까, 삶에 적용할 만한 귀한 문장 하나를 걸치게 되었다.
"모든 것을 나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자"
생각해 보면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정해져 있다.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고, 예측하는 범위 안에서 완성된 장면이 있다. 하지만 예측이 빗나가는 것도 모자라서 완전히 엉뚱한, 때로는 형편없는 일을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면 좌절은 물론 의구심이 찾아든다.
'하늘은 나와 뜻을 같이 하고 있는 게 맞을까?'
'삶은 나를 도우려는 마음이 있는 거야?'
그때마다 의구심은 불평과 불만으로 이어졌고, 전체적으로 경계 태세가 되면서 온몸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실 여기가 함정이라는 것을 예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진흙탕에 빠진 것처럼 허둥거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한참, 때로는 며칠을 헤매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구덩이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꿈을 꾼 것 같은, 하지만 꿈이 아닌 시간을 얼마간 보내고 나면 그제야 상황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때의 감정, 생각, 느낌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단 하나의 질문을 만나게 되었다.
"이제 그만 괴롭히는 게 어때? 힘들지 않아?"
'모든 것을 나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라'라는 말은 생존 본능에서 나온 결론 같은 것이다. 결과에 대해 더 이상 나를 질책하거나 괴롭히지 않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아픈 만큼 성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배움이 생겨나는 것은 분명하다고, 굉장히 구체적인 상황이지만 어떤 추상적인 메시지가 숨어있다는 것을 배우는 기회라고 믿기로 결정한 것이다. 다행히 그때부터 호흡이 차분해지기 시작하면서 평온함이 찾아들었다. 세상에는 경험을 해봐야만 배우는 게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을 나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자'라는 말도 문장으로 배우기엔 너무 어려웠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