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집에서는 딸은 모두 엄마 편이라고 하는데

by 윤슬작가

엄마의 과거를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상황과 모습, 부부와 부모, 엄마를 정식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알게 된 생각과 감정들이 엄마, 나아가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도와주었을 뿐이다. 거기에는 엄마가 만들어준 것도 있고,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서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부분도 있고,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엄마의 편에 서는 날이 많아졌고, 그 모습에 아버지는 나를 포함한 우리 형제에게 서운함을 드러내셨다.


"너희들은 모두 엄마 편이야!"


엄마에게 나와 두 남동생이 든든한 배경이자, 인생의 전부였다. 기대만큼 공부를 해내지 못했지만, 걸출한 인물이 되지 못했지만, 늘 걱정이 끊이지 않게 하는 게 자식이라고 말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엄마에게 '개인의 삶'은 없었다. 오로지 '가족', 특히 '자식'뿐이었다. 그렇기에 엄마 중심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우리는 엄마 편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더해졌다. 세밀하게 따지는 것보다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마음이 생겨났고, 판단이나 평가보다는 공감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노년, 늙음, 죽음이라는 단어가 실체는 없지만 두려움이라는 이름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변화가 생겨났다. 더 이상 '편'이라는 것이 의미 없게 느껴졌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 함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변화가 엄마에게는 배신으로 다가갔던 모양이다. 어느 오후, 엄마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때였다.


"다른 집에서는 딸은 모두 엄마 편이라고 하는데, 너는 어떻게 된 게 엄마 편을 안 들고, 느거 아버지 편을 드노? 엄마가 속 터지고 답답한 것은 보이지 않나?"


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영역이지만, 이제는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아빠 입장에서 몇 마디를 건넸는데, 끝내 마음의 서운함이 사라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무조건적인 편이 되지 않고, 아주 약간이지만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못내 속상한 것 같았다. 나름대로는 충분히 공감을 해주었다고 말하지만, 완벽한 공감이 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무조건 공감하고 호응해 주기,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실전에서는 수시로 좌절을 맛보게 된다. 나를 더 탐색해야 하는 걸까 엄마를 더 탐색해야 하는 걸까. 고민이 생겨나는 부분이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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