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어 서점 / 김초엽을 다시 만나다

by 윤슬작가


'우주에 대해 상상하는 걸 좋아하지만 우주에 직접 가고 싶지는 않은 SF 작가'

'취미는 두 달마다 바뀌는데, 가장 오래가는 건 게임'

'언젠가는 젭에 모든 종류의 게임 콘솔과 커다란 스크린이 구비된 게임방을 만들고,...'


그녀의 프로필에 시선이 간다. 만약 그녀의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지 않았다면 그녀에게서 과학도라는 단어를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 같다. 기발한 소재를 바탕으로, 짧고 굵은 문장을 자랑하는 솜씨 좋은 작가를 만났다고 얘기했을 것 같다. 작품 활동에 대한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해결하는, 늦은 밤까지 작업을 끝낸 후 자신만의 세계관이 녹아든 게임방을 향해 기분 좋게 꿈나라로 달려가는 모습을 상상했을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저자는 화학을 전공한 과학도이며, <관내 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한국 과학 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느 기사 인터뷰에서 읽었는데, 저자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1년만 글을 써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이르렀다고 했다.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만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바람이라고 한다.


"낯설고도 감각적인 열네 편의 이야기"


책의 띠지에 붙어있는 문장이다. 띠지에 소개된 것처럼 <행성어 서점>은 평소 시선이 닿지 않은 것들이 소재가 되는데, 김초엽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표현이 하모니를 이루는데 성공한다. 그래서 작품 하나하나 분량이 짧은데 비해 긴 여운을 안겨주었다. 책은 크게 두 개로 분류되어, 1부는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2부는 하나는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이다. 1부는 개인을 포함한 '인간'이라는 종이 지닌 감정이 중심 소재였다. 사랑, 연민, 기쁨, 연대, 소망. 2부에서는 소제목에서 알 수 있둣 타인, 혹은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에 대한 배려, 연민이 목적지였다. 이해, 배려, 공존, 공생, 관대함까지. 정확하게 파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협력과 연대에 대한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인간적 모순과 한계를 함께 다루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작품 속 스토리가 아니어도 일상에서 경험한 비슷한 장면이나 불쑥 자신을 덮쳤던 감정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양한 타인, 세계의 등장을 통해 저자의 시선이 얼마나 넓게 펼쳐져 있는지 예상이 가고도 남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상황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초현실주의가 아닌 마치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짧은 단편이었지만 좋은 문장이 많았다. 멈춰 서서 생각해 보게 만드는 문장도 상당했다. 여러 방향에서 해석이 생겨났고, 나의 세계관을 점검하게 만드는 시간을 가지게 했으니 열린 결말을 즐기는 저자의 의도가 적중한 것 같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p. 30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생각하면서... (중략) 그때 나는 불행히도 나에게 고통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

p.73

진짜 나의 얼굴은 나를 예언했던 사람들이나 나를 전망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나를 실제로 만난 사람들만이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것이 바로 나의 모습임에 분명하다.

p.118

개별적 개체성, 그게 인간일 때의 나를 가장 불행하게 만들고 외롭게 만들었어. 동시에 나를 살아가게 했지. 개별적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전체의 일부라는 건 모순이 아니라. 아니면, 전체라는 건 애초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중략) 그럼에도 소년은 우리의 완전한 일부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그런 모순을 품고 있다.

p.172

버섯으로 뒤덮인 아이들에게도 공용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는 청년을 보면서 라트나는 기이한 기분에 휩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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