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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 아버지의 해방 일지

by 윤슬작가

역사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지만, 현대사를 읽을 때는 괴리감이 느껴질 때가 많다. 과연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이데올로기가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인지, 그러한 개념들이 존재,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그런 의문을 속에서 수많은 존재가 역사 뒤로 사라졌다. 이름을 알아봐 주고, 불러주고 싶었지만 그들은 사라졌고, 잊혔다. 그런데 여기 그들을 위한 또 한 권의 책이 도착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빨치산의 딸>로 살아온 정지아 작가가 '빨치산'이라는 이데올로기 소용돌이 속에서 살다가 떠난 '아버지'의 죽음을 소개하며 우리를 과거로 초대한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로 시작하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지리산과 백운산에서 활동하던, 빨치산인 아버지의 장례식장이 무대이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처음부터 소설이 끝날 무렵까지 장례식장인데, 저자의 탁월한 솜씨에 이끌려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3일이라는 시간적 배경도 마찬가지이다. 3일이 아니라, 30일, 30년, 그 이상이었다.


간략하게 내용을 살펴보면 아버지는 빨갱이였고, 위장 자수를 해서라도 조직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했으나 실패로 돌아간다. 사회주의자, 유물론자인 아버지, 그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고, 자신의 행동에서 신념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는 가족들에게 가해자였다. 자신으로 인해 연좌제를 겪은 가족들, 특히 작은아버지와의 불화를 지켜보면서 다른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가족을 저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었다. 형을 자랑스러워했다는 것으로 인해, 자신의 말실수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장례식장에 찾는 사람은 가족 아니면 친구, 아니면 함께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네에서 시곗방을 하는 박한우 선생은 아버지와 둘도 없는 친구이다. 서로에 대한 의지가 대단한데도,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친구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은 이심전심이었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은 베트남 소녀와 그의 어머니다. 저자와 아버지의 일화에 대해서 알고 있는 담배를 피우는 샛노란 머리의 소녀,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가 모든 사람이 떠난 늦은 시각 장례식장을 찾는다. 마지막 인사는 해야 할 것 같다면서. 여러 사람이 오가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의 세밀한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저자는 궁금증이 생겨난다.


"나는 정말 아버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알던 아버지는 진짜일까?"


저자는 아버지를 싫어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사랑했다. 그러나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운 존재였다. 아버지에게는 늘 자신만의 의견이 있었고, 그 의견은 모녀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듯 왔다 갔다 움직였다. 그러다 아버지가 해방의 길로 떠난 후에야 진짜 모습을 알게 된다. 배척이 아니라 포용을, 갈등이 아니라 인내를,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존재를 끌어안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아버지. 아버지 딸, 참 오래도 잘못 살았습니다. 그래도 뭐, 환갑 전에 알기는 했으니 쭉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딸을 대장부의 몸으로 낳아주신 것도, 하의 상의 인물로 낳아주신 것도 다 이해할 터이니 그간의 오만을, 무례를, 어리석음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감사합니다, 아버지. 애기도 하는 이 쉬운 말을 환갑 목전에 두고 아버지 가고 난 이제야 합니다. 어쩌겠어요? 그게 아버지 딸인걸. 이 못난 딸이 이 책을 아버지께 바칩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감사한 마음이다.

이데올로기나 신념에 묶이지 말고, 서사와 맥락을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주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아픔으로, 불편함으로 다가오지 않고 여러 편의 시트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완성해 주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작가의 말에서처럼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아버지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지금 노력하라고 말해주어서.


지나온 역사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여본다. 지금 살아가는 이 세상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목숨 값이라는 것을 새삼 떠올려본다. 그리고 민감한 이야기를 전혀 민감하지 않게, 오히려 유쾌하게 풀어낸 작가의 솜씨가 놀랍다. 정말 소설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높은 장벽을 제대로 실감했다. 그저 막연한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고, 마음에 꾹꾹 눌러 담으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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