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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권의 인생책을 만나다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by 윤슬작가

'내 나이 오십에 어디에 있을까?'

'내 나이 육십에 어디를 바라보고 있을까?'

'내 나이 칠십에...?'


앞으로의 일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간단하게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반면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있다.

바로 '내 나이 오십, 육십, 칠십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누구와 함께 있는 나는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내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내는 일이든, 누군가의 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든, 글쓰기에 대한 매력에 흠뻑 빠져 몸을 반쯤 기대어 있을 것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햇살이 비치는 오후든, 늦은 밤이든, 동트기 전의 적막을 목격하는 자리든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절정이든, 위기든,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문장을 두고 살아있음을 되새김질하면서 말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살 것 같은 느낌에 온몸이 전율을 일으킨다.


이런 바람을 격려하듯 한 권의 책이 내게로 왔다. 이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지난 10월 초부터 손에 잡았는데, 매일 조금씩, 조금씩 음미하듯 읽어내려왔다. 빨리 읽을 이유가 없었다. 미음을 먹는 것처럼 매끄럽게 넘어가는 날도 있었지만, 한 글자씩 꼭꼭 씹어야만 했던 날이 있었기에 조건을 달지 않고 흐름에 몸과 마음을 내맡겼다. 일찍 엄마를 잃은 이어령 선생님은 어렸을 때부터 매일 죽음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삶을 선택한 셈이다. 그랬기에 죽음을 목전에 두고 <마지막 수업>이라는 선물을 내놓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지수 작가의 솜씨가 스승의 무거운 가르침에 친절함을 얹었다. 일 년 동안 열여섯번의 인터뷰가 초석이 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을 요구하며 멈추게 하고, 나아가게 하고, 되돌아보게 했다. 비유와 은유로 얘기할 거라고 서두에 밝혔지만 어느 하나 가벼운 것이 없었다. 날카롭고, 예리했으며, 때로는 가슴 한가운데에 훅 밀고 쳐들어왔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동시에 그만큼 희열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뭔가가 깨지는 느낌, 새롭게 채워지는 느낌, 변형되는 느낌이 몸 안의 세포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자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사랑, 꿈, 종교, 용서, 행복, 가족... 겨우 조금 알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얇디얇은 막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인데, 덕분에 조금 더 견고해졌다. 비록 모든 가르침을 나의 세계로 끌어오지는 못했지만 끝끝내 물음표로 남아있던 몇 가지가 느낌표와 조화를 이뤄낸 계기가 되어 더없이 고마운 마음이다.철학이 시학이 되고, 작품이 춤이 되기를 꿈꿔본다. 딱 중심 잡기 좋을 정도의 마인드를 유지한 채 바람이 오가는 통로를 열어놓은 존재로 살아가고 싶다. 마치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것처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그 메시지를 이어령 선생님에게서 다시 발견했다. 물론 선생님의 언어는 훨씬 더 쉽고 간결했다.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 이어령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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