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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작가 Jan 09. 2023

벌써 19년이 흘렀다

결혼기념일을 가장 잘 떠올리게 되는 날이 있다. 바로 달력을 바꿨을 때이다. 해가 바뀌면 나는 달력을 펼쳐놓고 집안의 행사 및 기념일을 하나씩 기록한다. 맨 처음, 1월에 무슨 행사 있었더라 생각하다 보면 결혼기념일이 가장 먼저 나온다. 해가 바뀌고 이유 없이 마음이 분주해지는 며칠 흐른 4일이 결혼기념일이다. 결혼, 아주 가끔 후회될 때도 생겨나지만, 전체적으로 '그래도 결혼하기를 잘 했어'라는 말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결혼기념일이라고 해서 특별한 장소를 간다거나 근사한 곳에 외식을 한다거나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뭔가를 하지는 않는다. 며칠 지나고 난 후 뒤늦게 알아차리기도 하고, 아침에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네'라고 얘기하는 것이 전부이다. 많은 부분에 대해 무덤덤해졌는데, 결혼기념일도 비슷하다.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때가 많다.


'벌써 19년이 되었구나!'


지난 4일,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아침에 잠시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네'라고 말한 것이 전부이다. 아침을 먹고 각자 일터로 향했고, 그날은 저녁 수업이 있어 조금 늦게 귀가했다. 건강한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출출한 배를 달래야 했지만, 저녁인지, 야식인지, 특식인지 남편과 막걸리 한 잔을 주고받았다. 식탁에 있던 귤, 황태채를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아침에 결혼기념일이라는 얘기를 했던 이유일까, 남편과 식탁에 앉아 있는데 두 아이가 서랍에서 과자를 꺼내와 함께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 콜라와 생수를 들어 올리며 '위하여!'를 외치자고 했다.


"결혼 기념일을 축하하며!"

"방학식을 기념하며!"


아, 그랬다. 그날은 두 아이의 방학식이 있는 날이었다. 위대한 것으로 따지자면 막상막하였다. 결혼기념일과 방학식. 그래도 조금 더 우위를 점령하기 위해 목소리를 놓였다. 엄마와 아빠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방학식이 생겨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방학식 덕분일까. 엉뚱해 보이는 연결해도 두 아이가 콜라와 생수를 마시며 '그렇지, 그렇지'를 외쳐주며 기념일을 축하해 주었다. 당연히 우리는 두 아이의 방학식을 축하해 주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언젠가 행복한 집과 불행한 집의 차이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행복한 집에서는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고,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자신의 것을 강조하지도 않았고, 누군가의 것에 대해 가벼운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이 생각나는 1월 4일이었다. 지극히 평범하다면 평범한, 그렇지만 좋은 의도를 감추지 않는 시간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멋진 배경화면이 있었다면 제법 근사한 그림이 완성되었을 것 같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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