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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작가 Mar 20. 2023

반갑다. 친구야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얘기하려니 지나친 일반화가 될 것 같아 조심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하지 않으면 말을 이어나가지 못할 것 같다. 젊은 세대들은 나이를 묻는 것에 대해 조금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내 나이 혹은 나보다 연장자들이 있는 무리에 가면 자연스럽게 나이 이야기가 나온다. 몇 년도에 태어났는지, 어떤 경우에는 학번이 어떻게 되는지 묻는다. 그러고는 간단하게라도 확인하고 나면 이후부터 호칭이 정해진다.  


"형님!"

"어, 나보다 어리네? 그럼 동생?"


이해하기에 따라서는 서열을 가른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아주 가끔이지만 나 역시 그런 기분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말을 높이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한 살 어리다는 이유로 말을 놓았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어떤 날에는 무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이를 묻거나, 출생연도를 묻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해야 한다는 쪽이다. 그런데 얼마 전, 그런 나의 생각에 또 하나의 관점이 더해졌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곳에 발을 디뎠다.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터라 딱히 존재감을 고민하지는 않았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느끼며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 생각, 감정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연스럽게 나이를 묻고, 학번을 묻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름을 불러줘야 하는데, 이름을 부르는 것이 쉽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이름 뒤에 붙여야 할 적당한 호칭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형, 누나, 형님, 동생이 등장했다. 어느 순간 듣다 보니 형과 동생, 누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주 큰 목소리가 들렸다.     


"반갑다. 친구야"


반갑다, 친구야'라는 말이 크게 들린 것은 나만이 아닌 것 같았다. 거기에 있던 몇몇의 사람이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내 눈에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궁금증에 고개를 돌렸다. 보조개가 잔뜩 들어간, 둥근 계란형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 사람은 마치 진흙 속에서 보물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오랫동안 찾아다닌 사람의 모습이었다. 아주 짧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순간적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 어쩌면 우리는 서열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어. 서열을 정하기 위해 나이를 묻고, 학번을 묻는 게 아니었어. 호칭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내가 겪은 감정에 대한 부수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친구를 찾고 있었던 거야. 조금 더 마음을 편하게 나눌 사람을 찾고 있었던 거야' 


서양은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우리는 나이가 똑같아도 족보에서 서열이 높으면 함부로 이름을 부를 수 없다. 그러니까 서열을 좋아한다기보다 서열을 통해 질서를 추구해온 민족이다. 학번을 좋아했다기보다 조직력이 요구되는 시절을 살아냈다. 어쩌면 출생연도, 학번을 묻는 것은 그렇게 살아온 길의 흔적이라는 생각이 아닐까. 


     

'반갑다, 친구야'     

아주 높은, 씩씩한 목소리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해 본다. 

서열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서열을 추구하게 아니라는, 궁극적으로 동등함을 추구한다는 그런 희망 말이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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