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는 마음과 슬픔은 어울리지 않다. 하지만 처음 며칠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단어로 표현한다면 '슬픔'이 될 것 같다. 충분히 납득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용서도 일어나고, 우울감에 휩싸이지 않는다. 하지만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감정 앞에서 당황했다. 아주 가끔씩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 같다. 최종 원고를 완성한 어느 날에도 그랬고, 하루 종일 열몇 권의 책을 들었다가 놨다가를 반복했을 때도 그랬고, 자판 위에서 빠르게 움직이던 손가락이 두 번째 줄에 나아가지 못했을 때도 그랬다. 남편과의 사소한 말다툼이 끝내 길을 찾지 못했을 때 이런 일이 또 반복되면 어떻게 하지, 혼자만의 동굴에 빠져든 날에도 그랬다. 어떻게든 지나온 시간이지만 감정은 쉽게 흔들렸다. 그런 흔들거림을 한데 뭉쳐야 한다면, 나는 슬픔이라고 얘기할 것 같다. 큰 슬픔, 작은 슬픔 할 것 없이 그냥 슬픔. 정확한 근거도 없다. 말하기도 어렵고 문장으로 표현하기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더러, 가끔씩 결정적인 이유를 모른 채 깊은 슬픔에 잠길 때가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슬픔에 대한 나의 태도이다. 나는 슬픔을 다룰 줄 몰랐다. 그보다는 외면하고 피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에 의해서든, 누구를 통해서든 그런 순간의 공기와 분위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혼자 상상력을 발휘했고, 표면적으로는 슬픔과 거리가 먼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다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나는데, 요즘의 나를 살펴보면 조금 달라진 모습이다. 어떻게 보면 무덤덤해진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해보면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마음이 바위처럼 굳어버린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아주 가끔 나도 헷갈린다. 나의 심장은 뛰고 있는 걸까, 멈춘 것은 아닐까. 지금 괜찮은 것인가. 마치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다.
몇 년은 이런 감정들로 인해 복잡했다. 발견하고 배우고 터득한 것인지, 아니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좋게 해석하면 평온함을 되찾은 것이고, 반대편에서 보면 영광스러운 상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작년, 그 이전에 했던 것들 외에 새롭게 덧붙인 것이 있으며, 한쪽 문이 닫혔다고 해서 그쪽으로만 고개를 돌리고 멍하니 서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힘을 이끌어내었고, 고개를 돌리기보다는 정면을 응시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슬픔으로 인해 해야 할 것을 놓아버리거나 그동안 쌓아 올린 것을 무참하게 무너뜨리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찬사라면 찬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만난 슬픔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나를 돌보듯, 슬픔을 돌보았다. 그렇게 며칠, 몇 날 동안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 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슬픔이 말을 건네온다.
"이제 슬슬 일어나 볼까?"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