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시대적 배경을 필요로 한다.
사회적,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동시에 극적인 결말에 대해 사전 동의를 구하게 된다. <위대한 개츠비> 역시 예외가 아니다. 1925년에 출간된 <위대한 개츠비>는 여성의 경우 누구와 결혼을 하느냐에 따라 남은 인생의 수준이 달라지고, 1차 세계대전이후 살아남은 자들이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간접적으로 잘 드러나고 있다.
가난하게 태어난 개츠비.
상류층에서 태어난 데이지.
그들의 앞날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충분히 예상이 간다.
4월은 흘러갔다.
이제 4월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건만
똑같은 사랑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
'위대하다'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던 것 같다.
'가난했던 개츠비가 신흥 부자가 되어 데이지 앞에 나타난 것에 대해 위대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사랑하는 데이지를 위해 자신이 윌슨을 죽인 범인이라고 얘기하는 용기를 위대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F. 스콧 피츠제럴드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해 J.D.샐린저 등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로 알려져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더욱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위대한'에 담긴 의미에 대해.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전하고 싶었던, '위대한'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기 위해.
개츠비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범죄(밀주 유통)을 하면서까지 그는 자신의 목표를 잊지 않았고, 끝내 부자가 되어 데이지 옆집으로 이사오는데 성공한다. 그리고는 데이지의 사촌인 닉(작품속의 화자)와 친분을 쌓아, 그를 통해 데이지와의 재회에 성공한다.
물론 데이지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고, 남편인 톰은 폴로 선수로 태생적으로 부유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는 데이지 몰래 내연녀(윌슨)을 만나는 중이었는데, 처음에는 둘 사이를 알지 못하다가 조금씩 의심이 깊어져간다. 그러던 중 데이지, 톰, 개츠비가 '사랑'에 언성이 높아지게 되고, 개츠비와 데이지가 함께 집으로 차를 타고 돌아오는 도중, 데이지의 운전 부주의로 윌슨을 죽이게 된다. 범인이 누구인지 분명한 상황에서 개츠비는 사랑하는 데이지의 죄를 자신이 끌어안는다. 궁금증이 증폭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였다.
'개츠비의 사랑은 사랑일까, 집착일까.'
'개츠비의 사랑은 위대한 걸까, 어리석은 걸까.'
그의 환상은 그녀를 넘어섰고,
모든 것을 넘어섰다.
그는 창조적인 열정을 가지고
그 환상에 자신을 내던졌고,
그 환상을 끊임없이 키웠고,
자기 앞에 떠도는 화려한 깃털을 모두 모아서
그 환상을 장식했던 것이다.
정열이나 신선함이 아무리 많아도,
한 인간이
그 유령 같은 마음속에
비축할 수 있는 것을 당할 수는 없다.
-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
청춘.
사랑.
열병.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개츠비의 삶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견뎌낸 개츠비의 태도에 대해 존경의 마음이 생겨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긴 인생에서 '단 하나'만을 바라보는 것을 위대함으로 표현한다면, 일상의 자잘한 조각이 가벼워지는 것 같아 동의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위대한'은 궁극적으로 '성공적인 삶'과 연결되어야 하는데 개츠비는 물론, 여기에 등장한 어느 누구에게서도 '성공적인 삶'에 대한 은유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만약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방향이 '위대한'에 대한 의문과 질문을 이끌어내는 것에 있었다면, 그로 인해 고민에 빠드리는 순간을 그리고 있었다면, 성공적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존재'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고, '사랑'이라는 가치가 실현되는 순간에 대한 나만의 그림을 그려내라고 말하고 싶어했다면 더더욱 성공적이었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