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육아서는 필요하다
고등학교 3학년, 중학교 3학년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육아서를 찾는 일은 줄어들었다. 청소년 감정코칭이라든가, 청소년의 발달과 관련된 책,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진로 관련 책을 찾아 읽어보기는 했지만, 육아서는 정말 오랜만이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한 번 더 생각했던 것 같다.
'여전히 육아서는 필요하구나.'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걸어왔는지를 떠올릴 이유는 충분하다.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지, 평균이 얼마인지는 알지까지, 여전히 '최소한'과 '평균'이라는 단어를 내 삶에서 완벽하게 분리하지 못했다. 솔직히 아이의 인생이 달려있다고 하니 더욱 신중해지는데, 그래서인지 조금만 방심하면 봄바람이 태풍의 눈으로 금세 돌변한다. 여전히 그런 순간이 찾아오기에, 앞으로도 그런 순간이 찾아올 것을 알기에 곁에 두고 수시로 꺼내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기본에 충실하자.
본질에 충실하자.
「본질 육아」라는 책에서 단 하나의 키워드를 찾아낸다면 기본 또는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 육아 이전에 존재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육아 이전에 부모라는 자리에 대해 고민하라고 목소리에 힘을 준다.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함께 성장한다는 관점으로 불행이 아니라 행복해지는 길을 용기 있게 선택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말이다. 나 역시 육아를 잘 몰랐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육아서를 반복적으로 읽는 동안, '어쩌면 내가 틀렸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존재가 세상과 만나는 지점에 함께 서 있는 사람이고, 그 존재가 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지닐 수 있도록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니까 육아의 최종 목적지는 챕터의 제목처럼 '아이가 자신의 배를 띄울 때까지' 곁에 함께 서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삶의 근본을 보여주는 부모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아이
기본 원칙을 지키고 있느냐는 질문 앞에서.
이 책에서 가장 특별하게 와닿았던 부분, 기본 원칙.
저자는 쌀, 물, 불 세 가지 요소를 활용한 밥 짓기 요법으로 메시지를 대신하고 있었는데,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쌀 : 아이 (잠재력)
물 : 사랑과 보호
불 : 가치와 마음자세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가 좋았다. 쌀이 본연의 맛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러니까 만두와 달리 그 속에 뭔가를 채워주기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시작이자 완성이라는 표현이 좋았다. "맛있는 밥을 할 때 물 넣고 뚜껑 덮고 불을 지피기만 하면 쌀이 본연의 맛을 드러낸다. 밥을 할 때 뚜껑 열고 들쑤시는 사람이 있는가? 내가 원하는 맛이 아니라고 소금, 후추 치는 사람이 있는가? 상상만 해도 밥맛이 떨어지지 않는가. 밥을 할 때는 필요한 요건만 맞추어주고 뜸 들이듯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줘야 한다"라는 문장 하나에 주제의식을 모두 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적 동기보다는 내적 동기에 집중하자.
이 부분은 밥 짓기 요법에서 사랑과 가치 교육과 연관되어 소개되는 내용이다. 강의를 이어오는 동안, 부모들이 저자의 생각에 대해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부분에 대한 부연 설명이기도 하다.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내적 동기가 더 강하고 오래 지속된다고, 내적 동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를 혼동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여러 번 설명한다.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를 혼동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남을 돕는 것도 외부에 관련된 것이니 외적 동기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내적 동기는 그 행위 자체에서 오는 동기다. 만약에 남으 돕는 행위가 기여와 배려라는 가치를 위해서, 내가 그들을 돕고자 하는 순수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남에게 칭찬을 듣거나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바란 것이라며, 외적 동기가 크게 개입했다고 하겠다. 반면 내가 그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기쁘고 뿌듯해서 한다면 내적 동기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 부분은 깨달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감하면서 읽은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다른 곳, 다른 사람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내가 그랬다. 내가 하는 행위들, 내가 했던 것들은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많았다. 그저 내가 그것을 원했고, 결과적으로 그 과정에서 내가 성장을 맛보았고, 기여 또는 자기실현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기회를 얻었을 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과 그것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이 세상에 보탬이 된다면 그것이 자기실현을 향한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을 정리해 보는 요즘이다.
누구도 이기려고 세상에 오지 않았다.
챕터의 제목 중에 '조금만 실패해도 이생망을 말하는 아이들'이라는 문장이 있다. 관련 부분을 여러 번 읽으면서 내 마음을 여러 번 들춰보았다. 나 또한 어떤 시련이 와도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지 않을까라고. 아예 처음부터 넘어지지 않고,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라고. 미리 준비해서 어려움을 피하고 좋은 날만 내 아이들에게 찾아오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어쩌면 출발부터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배를 만들어놓고 부두에 묶어 놓으면 무슨 의미란 말인가. 배는 바다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데, 안전하다는 이유로 항구에 두는 것은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보다는 오히려 바다에서 만날 것들에 항구에서 직접 부딪치면서 미리 연습해 보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 같아 보였다. 예상과 다른 결과를 두고 실패가 아니라 경험으로 정의하고, 경험을 자산 목록에 더하면서 말이다.
「본질 육아」는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서보다는 육아 입문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육아를 갓 시작한 부모에게서부터 나만의 육아 철학, 자녀 교육 철학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삶이 너에게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라는 말이 있다.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 표현이 있다면 하나만 건져보자. 그리고 그것을 방향등으로 삼아 다음 육아책을 읽을 때까지 길잡이별로 삼아보자. 나는 이번에 이 문장을 가슴에 담아 갈까 한다. 나를 위해, 그리고 두 아이를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우리는 이기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성장하기 위해 온 것이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