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일까?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제3자에게 생겨날 일이라고 여겼던 것이 불쑥 인생에 끼어들 때가 있다.
완벽한 적군, 그리고 완벽한 패배.
저자 지나영의 「마음이 흐르는 대로」의 첫 챕터는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일까?"라고 시작한다. 그녀의 고백 같은 독백이 낯설지 않다. 왜냐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아니 몇 번쯤 되뇌었을 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되면 '정말 지독하다, 지독해'라는 말과 함께 일상을 잠식당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저자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갔다. 심한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하던 것이 급기여 제대로 서 있거나 장시간 뭔가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의사였던 자신조차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의심을 하기보다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고, 무엇보다 병명 혹은 증상을 설명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는 사실이 더욱 그녀를 괴롭혔다. 우울증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변의 시선이 그녀를 힘들게 했지만, 결국 그녀는 병의 원명을 찾아낸다.
기립성 빈맥 증후군.
신경 매개 저혈압.
생소하기 그지 않는 병명을 마주한 그녀.
당황하기보다 오히려 안도되었다는 마음이 어느 정도는 이해도 되었다. 그리고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정신과 의사라는 일에 일시 멈춤을 누른다. 글자 그대로 '일시 멈춤'이었다. 그녀는 돌아오고 싶어 했다. 그녀가 있어야 할 곳으로, 단 한 명을 도울 수 있는 공간으로 말이다. 다행히 그녀는 돌아왔다. 전보다 근무 시간을 단축하고, 업무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이전처럼 열정을 발휘하기는 어렵지만, 자신의 소명을 밝히는 의사로서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는 그런 그녀의 과거와 현재, 그 안에서의 생각, 감정 변화, 그리고 신념을 다루고 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녀는 여러 방식으로 '진심'을 강조한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것을 잊지 말고, 소중한 것을 추구하는 태도를 유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누군가를 위해 살 것도 아니고, 보여주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진심이 아닌 것,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NO'를 얘기하라고 힘을 실어주고 있다. 왜냐하면 그런 하나하나의 생각이 삶으로 이어지고, 결국 그런 것들이 모여 내 인생을 설명한다는 사실을 잘 아는 까닭일 것이다.
후회하지 않는 삶, 그 이상을 위하여
또 이 책의 곳곳에는 여러 죽음이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그녀의 아버지 이야기를 비롯해 동료의 죽음, 어릴 적 친구의 죽음을 언급하며 '작별'을 언급한다. 물론 물론 그녀 역시 무너지기 전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이다. 물결에 이끌려 흘러왔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고,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삶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기준을 마련했고,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 어떤 것을 덜어내야 하는지 방향을 보다 명확하게 완성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좋은 결론을 제시한다기보다 좋은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삶은 소중하다
"인생의 의미란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뿌듯해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끝으로 책을 덮는데, 순간적으로 "모든 삶은 소중하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이 책 덕분에 내 삶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고,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상황이 긍정적이지 않더라도 긍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면서 마음이 흐르는 길을 향해 나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난치병과 함께 살아가는 그녀, 진심을 다해 삶에 마중 나가는 그녀를 응원해 주고 싶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자기 극복, 자기실현, 자기 초월의 길 위에 서 있는 그 누군가의 삶에도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글을 쓰는 이 순간, '지금 충분히 잘 하고 있어'라는 메시지와 함께 내 마음과 묻고 답하기를 이어나가는 나에게도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