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공정하지 않다는 느낌

by 윤슬작가

어쩌다 보니 내가 착한 사람이 되어 있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부모님께도 잘 하는 사람, 주변 사람의 마음을 살뜰히 챙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똑같든, 혹은 비슷한 말을 들을 때면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시작은 '내 마음이 편해서'였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불편한 게 싫었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 많이 신경 쓰는 성격 때문에 벌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굉장히 이기적인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 어쩌다가 이타심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들은 날마다 혼란스러웠다. 어딘가 공정하지 않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삶에는 혼란만 있는 게 아니라 질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자각하는 요즘이다. 왜냐하면 혼란스러움이 한결 잦아든 느낌이다. 나와의 시간을 통해 하나씩 주고받았고, 그 과정에서 나는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선 표면적이라고 해도 착한 사람이 착하지 않은 사람보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정적으로든, 결과적으로든 '선(善) 함'을 추구하는 모습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궁극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문제를 삼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 뭔가를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바로 이기심에서 출발했다는 점이었다. 이기심에서 출발하는 행위들, 솔직히 여러 방향으로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하기를 반복했지만, 이것을 막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예를 들어 옆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괜찮다고 해도, 내가 괜찮지 않은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괜찮지 않음이 괜찮음이 되어야 얼굴에 미소가 생겨난다는데, 누가 대신 해결해 준다는 것이 가능할까. 무기력한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정말 이게 나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경험과 성격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면서 먼저 나를 위한 선택이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나만의 생존전략일 수도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주한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오히려 쉽게 해결했다. 이런 느낌이 생겨나는 것도 타고난 성격이겠지만, 이런 느낌을 문제로 삼는 것도 나의 기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보다 대응방법을 바꾸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솟아나는 감정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 순간의 감정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내가 찾은 방법은 '공정하지 않다는, 그런 비슷한 느낌이 생겨나는 순간을 인생 학교의 과제로 받아들이자'였다.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깨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기심, 이타심을 고민하는 모든 순간이 배움과 성장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그때부터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솟아나는 감정에 대해서도, 그 이후의 대응에 대해서도 말이다.


오늘도 나는 가만히 지켜보는 일을 즐기고 있다.

내가 하는 행동을.

나의 행동 뒤에 숨어 있는 감정을.

그리고 그런 감정에 대응하는 나의 태도를.


fron. 기록 디자이너 윤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굴다리에는 신호등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