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정 부모님이 집을 리모델링을 했다. 리모델링이라고 하니 뭔가 거창할 것 같은데, 시작은 강화 마루가 갈라진 것이 문제였다. 벌써 몇 년 된 상태였는데, 모래와 작은 자갈이 자꾸 거실 바닥에 쌓이면서 수리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돌변했다. 강화 마루를 걷어내려고 건드렸더니 보일러 호수가 자칫 잘못하면 터질 수 있는 상황을 목격한 것이다. 거기에 외부에 페인트를 칠하고, 방수만 하려고 했던 일이 졸지에 리모델링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문제는 그런 과정에서 부모님의 의견이 나뉘었다는 것이다. 이왕 건드리게 되었다면 도배와 장판, 거실의 강화 마루만 교체할 게 아니라 부엌 싱크대도 교체하고, 방에도 보일러를 새로 깔자는 엄마와 꼭 필요한 것만 하자는 아버지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것이다. 어쩌면 일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두 분의 평소 성격이나 스타일을 볼 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한치의 빗나감도 없이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하고 싶은 엄마와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아버지, 이번에도 두 분은 완벽하게 달랐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나를 힘들게 했던 것 중의 하나가 이런 두 분의 모습에게서 자주 실망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한 명 한 명은 옳았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자신의 의견이 확고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지켜내기 위해 상대방의 말에서 허점을 찾아 정곡을 찌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과정은 불편한 일이었다. 서로를 너무 모른다는 느낌,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모습이 답답한 상황보다 더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도 균열이 생겼는지, 다행스럽게도 요즘은 내 생각에도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그러니까 '왜 저렇게 행동하지?'가 아니라 저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깨달음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질문을 궁금증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생각을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두 분. 엄마와 아버지는 질문이나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더 나은 결과가 도출된다는 경험을 가지지 못했다. 두 분이 살아낸 세월에서는 내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일이 더 잘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마음을 나눌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살아오셨으니, 그럴 수밖에 없구나'
'다른 생각, 다른 방식을 마냥 두려워했구나'
'의견이 온전히 받아들여진 경험이 없으니 의견을 말하지 않았구나'
'상대방도 일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구나'
하지만 깨달음이 있었다고 해서 삶이 극적으로 변화지 않는다.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남다른 두 분의 스타일이 인정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쉬움으로 가득차곤 한다. 두 분을 인정하려는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기분을 느끼는 날도 여러 번이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 뭔가를 가르치려는 마음, 이게 아니라 저렇게 해보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참아내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친정집 현관문 앞에서 의식적으로 잠시 머뭇거린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린다.
'두 분은 너무 다르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셨지. 완전히 다른 두 분이니, 큰소리가 날 수밖에 없지. 횟수가 줄었다고 해도 다툼이 생겨날 수밖에 없지. 그래, 욕심부리지 말자. 지금처럼 건강하게만 싸우시면 돼. 이게 이렇게 살아가는 거지.'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