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by 윤슬작가

결혼 전, 엄마가 운전면허증을 땄다. 아니, 운전면허증을 따야 한다고 줄곧 얘기했던 사람이 나였다. 내가 결혼해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지금 엄마가 살고 있는 곳은 교통이 불편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계속, 짬짬이 얘기를 건넸다. 지금이라도 운전면허를 따야 한다고, 이제부터라도 운전을 배워 나이가 들면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엄마로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엄마가 지니고 있는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다.


1988년의 어느 날, 대형 교통사고가 있었다. 그날 이후 엄마는 가뜩이나 겁이 많은데 운전이라고 하면 더욱 겁을 냈고, 아무리 피곤해도 잠을 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운전하는데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안심이 안 되었던 것이다. 자동차는 편리한 교통수단이기도 하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무서운 괴물로 변신한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한 엄마. 그날의 사고는 엄마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막냇동생까지 정말 말 그대로 죽다가 살아난 큰 사고였다. 병원에도 오래 있었고, 후유증도 상당했다.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엄마가 자동차가 무섭다고 운전면허를 따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마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아니, 나는 더 과장하고 포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엄마가 내가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운전면허증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운전하고 다니면서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희망과 시골 동네로 이사 오면서 겪는 생활 속의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바람이 완성한 결과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필기시험을 치를 때 엄마는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늘 배움에 목말라했고, 개인적으로 존재감을 지니고 싶었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아주 높은 점수로 필기시험에 통과했다. 남은 것은 코스와 주행이었다. 운전을 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익혀야 할 기술에 해당하는 것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엑셀에 발을 올리고, 브레이크를 밡는 연습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도 남편 혹은 자식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항상 내려놓던 사람이 스스로를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사치라는 생각을 좀처럼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필요 없다고, 이젠 엄마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지내도 된다고 얘기를 해주어도 크게 와닿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운전면허증을 따겠다는 엄마, 어떻게든 엄마의 마음을 위로하고 응원해 주고 싶었다. 그런 엄마와 함께 한적한 곳으로 운전 연습을 하러 갔을 때였다. 엄마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한 시간이었고, 도움을 주고 싶다는 열망이 만들어낸 하루였다. 이야기가 의도대로 아름답게 흘러갔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했다. 조수석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한적한 곳이라고 해도 장애물은 있었고, 눈앞에 다가올 때까지 가만히 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브레이크를 밟는 엄마에게 급기야 나는 소리를 높였고, 방향을 틀기 위해 악셀에 누르는 동안 벽에 차량 모서리가 긁히는 일이 발생했다.


그날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쏟아내었다. 이렇게 운전했다가는 사고 나기 쉽다고, 조심해서 운전해야지 이렇게 운전하면 정말 큰일 난다고. 엄마와 함께한 추억 중에 운전연습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항상 이 지점에서 끊긴다. 사람은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망각한다고 하더니, 딱 내가 그렇다.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 때문인지, 나를 위한 방어기제인지, 엄마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엄마를 위한답시고 시작한 일이 전혀 그렇게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늘 이 지점에서 멈춘다. 그러고는 이십 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다.


엄마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얼마나 서러웠을까.


이제야 고백하지만 나도 운전을 연습하기 위해 남동생의 도움을 받았다. 이것도 못 하냐고, 몇 번을 얘기해도 똑같이 하냐고 얘기하는데, 그날 얼마나 서러웠던지 차에서 내려 속상한 마음에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너한테 운전 안 배워!'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런 기억을 가진 내가 똑같은, 비슷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 이후 면허증을 받고 운전을 계속 이어나갔다면 모르겠는데, 여러 사정으로 엄마는 운전하는 것을 포기했다. 아마 그래서 더 미안하고, 더 속상한지도 모르겠다. 혹시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건 아닐까 싶어서.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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