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불을 넣다

by 윤슬작가

4월 중순부터 세탁기와 친밀감을 높여나가는 중이다. 일명, 오리털 이불이라 불리는 도톰한 이불과 작별 인사를 해야 하는데 4월 중순을 넘기도록 끌어안고 살았다. 낮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내일부터는 조금 얇은 이불을 덮어야지'라고 점심을 먹을 때마다 되뇌었지만 밤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오리털 이불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봄이 왔다고 하지만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보름전 쯤, 이불 교체 작업에 들어갔다. 겨울이불은 아니지만 조금 따듯함이 느껴지는 이불로도 충분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세탁기 앞이 말 그대로 이불이 장사진을 이뤘다. 각 방에서 나온 것들이 크기도 크고, 두껍기도 두꺼웠다. 그래서 순서를 정해줬다. 음 우선 여기까지 월요일, 다음은 수요일. 나머지는 금요일이라고. 거기에 이불을 꺼내는 중간마다 옷을 세탁하다 보니 매일 아침 세탁기를 돌리는 기분이었다.


5월에 들어와 어느정도 이불이 정리가 되면서 겨울옷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교차가 커서 낮에는 온도가 올라가고, 밤에는 차가운 날씨 탓에 옷 정리를 미루고 있었는데, 이불을 빨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 두 아이의 옷도 있고, 나의 옷과 남편 옷까지 한꺼번에 돌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옷 정리에도 순서를 정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나의 옷이었다. 그것이 지난 토요일이었는데, 겨울옷이다 보니 완전히 마르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어제부터 남편의 옷을 세탁기에 넣기 시작했는데, 색깔별로 구분하다 보니 이 또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뒤에 줄 서 있는 이불과 아이들의 옷을 보니 아무래도 다음주로 이어질 것 같다. 이불을 통해서든, 옷을 통해서든 새로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그러고보니 지난 주에 이불을 개어 넣으면서 혼잣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겨울에도 무탈하게 잘 보냈네. 다행이야...'

'내년에 다시 꺼낼 때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어...'

옷을 정리하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덕분에 이번 겨울 잘 보냈어. 이 옷을 입고 000에 갔었지. 그때 정말 좋았어...'

'내년에 옷을 다시 꺼낼 때도 지금처럼 가족 모두 건강하고, 따듯했으면 좋겠어...'


살아보지 않지 않은 날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하다. 살아온 날에 겪은 아픔 중에서 어떤 것은 아직까지 통증이 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하지만 살아봤기 때문에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순간의 평화로움, 고요함을 말이다. 세탁기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빨랫감이 아니라 다음을 기약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입을, 다음에 만날 장면을 위해 설렘이 포함된. 올해도 그랬던 것처럼, 내년에 다시 만날 때도 그러하기를 기대해본다. 잘 살아낸 마음이 반가움, 설렘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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