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처음부터 집중력이 좋았어?"
"아닌데"
"진짜?"
"그럼, 진짜"
조금 산만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인지, 아니면 공부할 양은 많은데 시간이 부족해서 걱정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답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같이 책상에 앉았는데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모습이 신기해 보였는지, 말을 걸어오지 않던 아이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을 건네왔다. 내가 보기엔 분명 예전보다 나아졌고, 훨씬 집중력이 발휘되는 것 같은데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한참 부족한 느낌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하나. 아이의 말과 무관하게, 모든 것이 내 눈에는 자연스러웠다. 예전보다 훨씬 더 집중력을 발휘하는 있고, 조금 더 나은 모습을 갖추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노력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엄마보다 훨씬 더 집중력 있는 사람이 될 거라는 당부를 나는 잊지 않았다.
집중력, 학습에 있어서든, 삶에 있어서든.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도 집중력이 좋지 않았다. 여기저기 눈과 귀가 잘 돌아가서 오히려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마음이 수시로 일어났다가 앉았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중력이 좋아졌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한 적이 있다. 카페의 구석진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는데, '벌써 시간이 저렇게 흘렀어?'라며 놀라 바쁘게 짐을 챙겨 카페를 나온 날이었다. 아침에 카페에 들어가면서 시작할 때는 몇 시까지 어떻게 해야지 목표를 세운 다음, 한두 번 시계를 보기는 했는데, 나중에는 시계를 봐야 한다는 것조차 잊어먹은 것이다. 그날의 충격은 놀라웠다. 카페를 빠져나오면서 그날 나는 나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했다. 나는 산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집중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적어도 집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에 대해서 만큼은 누구보다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사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집중력이 발휘하기 쉽다. 반면 하기 싫은 일에 대해 집중력을 높이는 건, 좋아하는 일을 할 때보다 훨씬 어렵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으니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저절로 집중력이 발휘되는 까닭에, 조금 하고 싶지 않은, 미루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게 나중에는 습관처럼 되어서, 전체적으로 집중력을 높이는데 기여한 것 같다.
우선 시간으로 환산하기. 나는 모든 일을 시간으로 환산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예상으로 하고, 그 시간에 맞춰 일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물론 목표를 세울 때 어느 정도의 계획도 만들었다. 이때의 계획은 절차적인 것을 포함한다. 그리고 시간으로 환산하면서 일부러 여유 있게 잡지 않았다. 10% 정도 빠듯하게 잡아 잠시라도 방심하면 놓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특히 주변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핸드폰을 보지 않겠다고 목표를 세우고는 전화가 오는 게 아니면 확인하지 않았다. '급하면 전화가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문자나 톡에 대해서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한두 번 확인하다 보면, 금세 산만해지면서 마음이 흩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불필요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있는 확률을 줄이는 것, 이것이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잘 해내기 위해 특별히 기울인 노력이었다.
습관이 무섭다고 했던가. 어느 순간부터 모든 일이 비슷한 흐름을 가졌다. 어떤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당면한 일에 집중했고, 핸드폰과 같은 방해요소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져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금 마주하는 일, 마주하는 상황에 집중하게 되었다. 멀티태스킹, 누군가는 그런 방식으로 성과를 만들고, 능력을 키웠다고 하던데, 나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나는 멀티태스킹이 어려웠다. 만약 나처럼 멀티태스킹 스타일이 아닌데, 집중력을 높이고 싶다는 고민을 가졌다면 내가 했던 방법을 시도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일을 시간으로 환산하고, 불필요한 행동을 하게 될 환경을 애초에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 내게 통했으니 통할 사람이 한 명은 더 있지 않을까.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