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헤세, 카프카, 프로이트, 융.
이름만 들어도 걸출한 이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한 쇼펜하우어, 그는 서양 철학계에서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한다. 오늘 최악이었지만, 내일 더 나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철학자. 인생의 의미는 없고, 태어났으니, 최선을 다해 빨리 죽는 것이 현명하다고 얘기하는 철학자. 고백건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결론이다. 그런데도, 그의 책을 다시 붙잡은 이유는 일평생 열한 권을 책을 썼고, 1만 페이지가 넘는 일기를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는 삶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니체의 능동적 허무주의가 떠오르는 것도 잠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낸 흔적에 숨겨놓은 진실을 마주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가 말하는 인생, 그가 말하는 인간,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세상에서 나만 외롭고,
나만 힘들고,
나만 피곤하고,
나만 희생당한다는 망령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우울의 명령에 완전히 정복당하면
사람의 영혼엔
오직 분노만이 남게 된다.
외로워서 화가 나고
피곤해서 화가 나고
남들이 행복해서 화가 나고
마침내 화만 나는
내가 싫어서
미칠 듯이 화가 난다.
그래서 그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힐 수만 있다면
이 세계 전부를
희생시켜도
값싸다는 논리에 봉착한다.
우울의 끝에서
열광이 태어나는 것이다.
열광은
기존의 것들을 부정함으로써
불씨가 지속된다.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중에서
어쩌면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굉장히 단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말한다. 인간은 모든 것이 가능하며, 항구를 출발해 항해하는 동안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존재라고 말이다. 누구 할 것이 없이 모두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눈여겨볼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주인공이라는 사실. 이 명백한 진실이 우리를 절망에 빠뜨린다.
모두 주인공인 세상.
절망은 필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미리 그 사실을 알아차려,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고 말한다. 한층 더 나아가 행복을 추구하거나 좋은 일만 찾아오라고 얘기하지 는 것, 그 모습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조언한다. 다시 말해, 쇼펜하우어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절망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지나쳐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희망’을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라는 사람밖에 없다."
그의 말이 마음에 큰 울림을 남긴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역설적인 제목에 한번, 그의 논리에 다시 한번, 빠른 속도로 읽었다가 요즘 천천히 다시 읽어내려가고 있다. 쇼펜하우어가 궁금한 사람들, 그의 철학에 대한 깊이를 더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