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디자이너 15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일 년에 최소 3번 정도는 진행했는데, 올해도 그렇고, 작년도 그렇고 일 년에 두 번 정도가 전부이다. <기록디자이너>라는 글쓰기 수업 타이틀은 지난 18년에 출간된 <기록을 디자인하다>의 아이디어를 정리한 것이다. 삶을 종이 위에 펼치는 과정이 지나온 시간을 디자인하는 기분을 갖게 하는 것은 물론, 내 앞에 남아있는 생(生)에 대한 밀도를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기록디자이너 수업은 나에게는 어떤 의미를 안겨주고 있을까?”
언젠가 운명처럼 내게 찾아든 질문이다. 나는 운명적인 질문을 마주한 사람처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대답하기 위해서는 진지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제는 내가 하는, 하려는 모든 것이 ‘나를 설명하는 도구’이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그러니까 ‘나답다’에 어울리는 행위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렇게 찾아낸 세 가지 답변에 혼자 만족하는 요즘이다.
기록디자이너 수업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나’를 위해서이다. 무엇보다 내가 즐겁고 기쁘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을 떨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물론, 글 쓰는 즐거움을 공유하는 일은 내게 기쁨을 안겨준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간단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 그게 내가 기록디자이너 수업을 하는 이유이다. 내가 경험한 것, 예를 들어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치유되는, 나아가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쉬워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나는 너무 좋다.
두 번째는 ‘성장’이다. 몇 년을 진행하다 보니 글쓰기를 함께 한 분들이 제법 생겨났다. 그중에는 작가가 되어 몇 권의 책을 출간한 분이 있고,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나만의 커리큘럼을 개설하여 개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가의 길이 아니더라도 나만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중이다. 그러니까 굉장한 구체적인 글쓰기 기술을 가르쳐 드린 것도 아닌데, 어떻게 보면 기본적인 원칙을 전달했을 뿐인데 거기에 나만의 색을 얹어, 날개를 달아 각자의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 모습이 내가 왜 기록디자이너 수업을 이어 나가야 하는 가장 확실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는 ‘좋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될 것 같다. 글쓰기는 삶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수동적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능동적으로 살아가기를 욕망한다. 그러니까 설정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정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것도 ‘좋은 방향으로 설정하는 것’에 말이다. 약간 더 과장한다면 세포 안에 새로운 DNA, 유전자를 장착하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좋은 일에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은 나에게 자긍심을 안겨준다. 좋은 삶을 살고 있다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정말 에머슨의 말처럼 ‘진정한 성공’에 가까운,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이곳을 조금이라도 좋은 곳으로 만드는, 단 한 명의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일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이타주의.
나는 이념적인 것들은 잘 모른다. 그들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것도 서툴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스스로 부끄럼이 없는 삶’,‘스스로가 마음에 드는 삶’에 대한 신념 같은 게 있다. 그것에 도움이 되는 도구로, 적극적으로 ‘글쓰기’를 추천해 주고 싶다. 기록디자이너 수업이 아니어도 좋다. 글쓰기 수업을 개설하는 이들의 마음이 곧 내 마음일 것이고, 그들이 바라보는 것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살아가는 데에 ‘글쓰기’만큼 좋은 게 없다. 내 말에 설득되어 어디에 있든, 어떤 방식으로든 글쓰기 수업을 참가하는 이들이 생겨난다면, 진짜 ‘어느 멋진 가을날’이 될 것 같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