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에서 니나는 자기가 쓴 소설의 주인공 한나에 대해 언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야. 가끔 그럴 뿐이야. 우리 모두는 약간은 비겁하고 계산적이고 이기적이지.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어. 내가 그리고 싶은 게 바로 이거야. 우리는 착하면서 동시에 악하고, 영웅적이면서 비겁하고, 인색하면서 관대하다는 것, 이 모든 것은 밀접하게 서로 붙어 있다는 것, (중략)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도 그것을 간단하게 만들려는 게 나는 싫어”
니나의 독백에 공감이 간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영웅이 아니다. 그녀의 말처럼 열정이 끓어올라 단단한 벽마저 뚫어버릴 기세를 자랑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사그라진 열정에 어떻게든 불씨를 지피기 위해 모든 안간힘을 동원해야 한다. 어쩌면 열정만큼 무서운 게 없는지도 모르겠다. 열정은 모닥불을 같다. 처음에 불을 붙이는 것이 어렵지, 나중에는 범위를 넓혀 주변을 따듯하게 만들어 내니 말이다. ‘시작은 미비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에 제법 잘 어울리는 단어가 열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열정은 찾는 것도 지켜나가는 일도 쉽지 않다. 애초에 형태가 없을뿐더러 결정적인 근거를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열정을 다루기 위해서는, 우선 열정을 발견하는 게 먼저이다. 어떻게 하면 열정을 발견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평소 나의 관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불 속에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들거나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거나 괜히 기분 좋아지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니까 누가 시킨 거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인데, 혼자 몇 시간째 매달리고 있는 게 있다면 열정의 씨앗일 확률이 높다.
열정의 씨앗이 발견되었다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열정을 발견했으니 이제 영웅이 될 차례만 남았을까. 애석하게도 씨앗이 곧 나무가 될 수는 없다. 씨앗이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정성과 노력이라고 하니 추상적으로 느껴질 것 같은데, 다른 열정의 씨앗에 대해서는 경험이 없지만, 글쓰기에 관해서는 몇 마디 건네줄 수 있을 것 같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발견되었다면, 이런 마음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내가 발견한 모든 것을 글로 표현해 보겠어.”
여행을 떠난 곳에서 발견된 것이 있다면 그것을 표현해 보고, 아침 햇살이 가득 내려앉은 거실의 풍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면 글로 옮겨보는 것이다. 선명하지 않아도 되고, 현실적이지 않아도 된다. 써 내려간 글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두루뭉술한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고 있다는 행위이며,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자신감’이다. 왜냐하면 ‘글을 쓴다는 행위’와 ‘자신감’이 열정에 기름을 붓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쓰는 동안에는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질문이 생겨나지 않았다. 열정을 이어 나갈 방법에 대해 고민도 하지 않았다. 글을 완성하고 난 후, ‘앞으로 글쓰기를 잘해 나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 같은 것도 머릿속에 없었다. 그보다는 다음에는 무엇을 써볼까를 궁리하느라 마음이 급해졌을 뿐이다. 그 마음이 오늘도 여기에 나를 서게 했고, 끝내 마침표를 만나게 했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