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면서 편집자 생활을 6년 정도 이어오고 있다. 편집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어떤 음악에 몸을 맡긴 것처럼, 자연스럽게 오늘에 이르렀다.
가끔 작가로만 생활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될 때가 있다. 아무래도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작가의 꿈을 가진 사람들과 책을 완성하는 과정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많은 게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지나온 나의 경험과 현재의 경험을 한데 뭉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여기에 이를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더 좋은, 더 나은 방향에서 전해줄 것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사실 편집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경험한 것은 작가로 바라볼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게 많다. 내 안에서 차고 넘치는 것을 드러내는 행위에만 집중했던 시절이라, 이것이 어떻게 다가가고, 읽히느냐는 두 번째 문제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가끔은 넘치도록 표현하는 일을 열심히 하였다. 하나라도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말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내 글을 읽어줄 사람, 독자의 입장이 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용감하게도 ‘내가 이렇게 생각하니, 당신도 이렇게 생각하세요’라는 마인드가 컸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가장 결정적인 실수라고 할 만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정말 몰라서 그랬다고 밖에 할 말이 없는데, 꼭 그만큼의 크기만큼 성장했다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글을 쓰고, 초고를 쓰고, 퇴고하다 보면 ‘아, 이제 그만할래’라는 말과 함께 입안에서 신물이 날 때가 있다. 자잘한 돌멩이가 쌓이고 쌓여 입안 가득 채워져 나름대로 ‘여기까지야’라고 선을 그으면서 얼른 뱉어 내리고 싶어진다. 나 또한 그렇게 출간한 책도 몇 권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런 부분에 관한 아쉬움이 적지 않다.
‘그때 며칠만 더 쉬었다가 다시 다듬었으면 좋았을걸’
‘내 시선이 아니라 독자의 시선에서 다시 다듬었으면 좋았을걸’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했으면 좋았을걸’
‘내 감정이나 생각을 설명할 게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느끼게 해 줄걸’
‘편집자의 눈을 가졌으면 좋았을걸’
편집자가 되고 나니 내용만큼이나 표현력이 중요하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처음과 끝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글의 온도가 달라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친절하게, 열심히 감정과 생각을 나열하는 것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메시지가 생동감 있게 다가간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내 마음을 두드리고, 머리를 달구는 게 아니라 독자의 마음을 두드리고, 뜨겁게 달구는 것이 방향이고, 목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얘기해주고 싶다. 작가라는 발판 위에서 편집자의 각도를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하면 훨씬 완성도 있는 글을 쓰게 될 거라고 말이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