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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작가 Jun 04. 2024

No. I'm serious

집에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공부 이야기가 나오면 저는 언제나 꼴등이기를 자처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남편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왔고, 두 아이 모두 영어 발음에서 저보다 월등합니다. 어디 영어 발음만 그럴까요. 수학도 저보다 훨씬 잘하고, 과학 이야기를 하면 기초부터 말해줘야 한다고 거듭 얘기합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둘째와 대학 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새내기 첫째와 함께 성적 이야기가 나왔고, 등급을 올리는 것이 어렵다는 얘기에 제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두 아이가 동시에 저를 향해 말했습니다.     


“엄마는 3등급이 쉬워 보이지?”

“아빠는 좀 알겠지. 아빠 3등급이 쉽다고 생각해?”

“쉽지 않지…. 그런데….”

“그치?”


남편이 제 눈치를 살피고, 두 아이는 아빠의 입을 바라보는 현장, 더 이상 이야기를 진행하는 건 그리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마무리했습니다.     


“아이쿠, 쏘리. 이거 공부 열심히 안 했더니 두고두고 구박받네. 오케이! 오케이! 실수!”     


공부에 관해서 큰 흥미를 느끼지도 못했고, 노력도 부족했던 사람이라 아이들이 조금 자란 이후부터 공부에 대해 아이들에게 신뢰감을 얻겠다는 마음은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다만 태도적인 부분, 그러니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생겨나면 열심히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조차도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지만 말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튜브로 100일 동안 영어 듣기도 하고, 단어 책으로 공부하기도 했는데, 근래에는 멈춤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앱을 하나 다운받아 소리 내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의 일입니다. 그날도 영어 앱을 틀어놓고 열심히 단어와 문장을 따라 외치고 있었습니다. 소리를 작게 하면 공부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씩씩하게 큰 목소리로 거실에서 외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엄마, 그만…. 그거 아니야.”

“발음이 완전히 다르잖아”

옆에서 남편이 웃으면서 슬쩍 한 마디를 건넸습니다.

“내가 봐도 이상한데….”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물러서지 않고 높여 외쳤습니다.     


“"No. I'm serious.”     


진짜 운명의 장난인지 방금 배운 문장이 그것이었는데, 타이밍이 절묘했습니다. 제 말이 남편과 아이 웃음 띈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두 사람을 향해 다시 한번 외쳤습니다.   


“"No. I'm serious.”     


저는 영어를 잘하지 못합니다. 발음도 엉망이고, 문법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이든, 유튜브든, 앱이든 공부를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가끔 나이나 현재 상황, 혹은 부끄러움을 배우는 것을 포기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런 방식을 가능한 한 지양합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 결국 한마디를 보태는 것으로 상황을 강제 종료시켰습니다.     


“잘하면 할 필요가 없지!”

“못하니까 방법을 찾는 거지!”

“원하는 게 있으면 열심히 노력하는 게 제일 멋진 거야!”     


from 윤슬작가     

#에세이 #공감에세이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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