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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질문속에서 살아간다

by 윤슬작가

며칠 전, 소고기집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는 소리, 튀어 오르는 기름, 낮게 깔린 대화들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유독 또렷하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바로 옆 테이블의 여자분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높았고, 감정은 더욱 격양되어 있었다. 억울함, 서운함, 배신감이 뒤섞인 말들이 매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단편적으로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조합해 보니,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주말에 오랜만에 시간이 난 남편에게 나들이를 가자고 제안했단다. 특별한 장소를 기대했지만, 남편의 입에서 나온 곳은 시댁이었고, 이미 부모님께 전화까지 드려놓은 상태였다. 나들이가 아니라 일을 하러 가는 분위기를 만든 남편의 태도에 실망한 그녀는 불만을 토로했다.



“내가 이상한 거야? 이혼하지 않으려고 참고 넘어갔는데, 이게 말이 돼?”



그녀의 말끝마다 울분이 묻어났다. 그녀의 감정에 공감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맞은편에 앉은 커플은 선배인 듯 보였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 자리는 해결책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기 위한 자리였다. 한참을 이야기한 뒤, 마침내 남편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거야? 내가 이상한 거야? 갈 수도 있지 않아? 나도 이혼하지 않으려고 참고 있는데, 이렇게 큰 소리로 내가 잘못한 것처럼 이야기하니까 나도 답답해 미치겠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커플은 각자의 역할을 맡은 듯했다. 여자 선배는 여자에게, 남자 선배는 남자에게 감정적인 위로를 건넸다.



“그럴 수도 있지.”

“네가 너무 참은 거야.”

“어떻게 그렇게 모를까 싶은 일이 있더라고.”

“그래, 그래. 네 마음 이해돼. 나도 그랬어.”



명확한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상대의 감정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주말에 청소하는 것도, 설거지하는 것도 왜 내가 더 많이 해야 돼? 말을 해야 알아? 눈에 보이면 알아서 해야 하지 않아?”



그녀의 울분은 끝이 없었다. 꼬리를 무는 사건들, 끝을 알 수 없는 감정의 퍼레이드. 낯설지 않은 장면이었고, 낯설지 않은 감정과 생각들이었다. 나 역시 저런 모습이었겠구나 싶었다. 내 목소리도 결코 작은 편이 아니다. 저런 톤으로, 저런 감정으로 이야기했던 적이 분명 있었다. 십 년 전의 어느 날도 그랬다. 그날, 결국 언성이 높아졌고, 남편과 나 중 한 사람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상황이 어처구니없이 끝났던 기억이 난다. 그래, 그랬다. 같은 주제를 두고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었다. 그러고 보면 사는 게 참 비슷한 것 같다. 비슷한 일로 다투고, 비슷한 것에 서운해하며,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내가 이상한 거야?”



어쩌면 이 질문은 상대에게 묻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하고,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고 싶은 마음이 그 출발점일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자신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질문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



나이가 들면서 이 문장이 가진 힘을 조금씩 알게 된다. 어떤 상황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 동시에 어느 순간에도 가장 필요한 말이 될 수 있다는 것. 소고기집에서의 대화가 어떻게 끝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날 감정과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었는지, 여전히 미제로 남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날의 감정은 또 다른 자리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각자의 목소리로 같은 질문을 던지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동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from 윤슬작가

#에세이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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