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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Aug 24. 2021

처서處暑

지난한 여름을 보내고


글 한 줄 쓰기 힘든 사람이 되어 여름을 맞았다. 여전히 작업을 하느라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었고, 시야가 흐릿해지는 날도 더러 있었다. 나가서 햇빛을 쬐자, 책에서 읽은 그 한 마디에 불면증으로 눈이 떠진 새벽에도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던 공기에, 비가 오는데도 동요 없이 걷던 사람들과 유유히 자전거를 타며 나를 앞서가던 사람들. 묘하게 위로되던 풍경, 그때 나는 쓸쓸하지 않았다.


꼭 빨래를 하면 비가 왔고 비가 와도 더웠지만 개의치 않았다. 손을 자주 뜯어서 손톱이 더 짜리 몽땅해졌고 운동을 했지만 식욕이 없어서 체력은 여전하고 마음도 여전히. 그러는 사이 여름은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일이 잦았던 팔월에 상처와 위로의 총량을 가늠해보다가 그만두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 어김없이 인연들이 생기고 사라졌다.


유난히 무해한 것이 그리웠고, 안전한 곳이 간절했고, 억지로 생을 이어가지 않기를 바랐다. 잠이 오지 않으면 자지 않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고. 그냥 그 정도의 단순함만을 바란 줄 알았는데 사실은 더 많은 것을 욕심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할 것 같았던 것들을 조금씩 버리던 여름.


이제 바람이 차가워지면 지독히 앓았던 여름의 단어들을 하루에 하나씩 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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