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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렌 Nov 03. 2019

카톡싫어증

카톡, 에너지 뱀파이어설

(예민한 사람이 싫은 사람은 "이렇게까지 예민해?" 할만한 내용)

Y I hate 카카오톡

1. 에너지 뱀파이어
기분 나쁜 카톡을 하고 나면 내가 일주일간 잡아놓은 생활의 밸런스가 깨진다. 기분이 태도가 되게 하면 안 된다는 화장실 명언도 있지만, 나는 기분이 곧 태도다. 그래서 나를 얼마나 잘 달래느냐가 내 성과와 직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사람의 마음은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들보다 중요하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그런 사람은 손에 꼽는다. 엄마 아빠 등등. 그들은 대게 내 상황을 존중해준다.

나는 세상에서 우리 엄마의 이야기를 가장 경청하고 싶은데, 엄마는 자기 안에 목소리가 정리되고 나서 얘기하는 사람이다. 이게 내게 익숙한 방식이다. 나도 그렇게 길러졌다. 조금 마음을 생각해보고, 이야기한다.


2. 영역 동물
어쩌면 난 영역 동물이 아닐까 싶다. 내 영역을 침범하면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화가 난다. 분노나 불안에 취약한 편인데, 에너지 뱀파이어들은 그 두 가지를 모두 겨냥한다. 이렇게 기가 빨리고 나면! 나는 얼마나 또 열심히 수혈을 해야 하는지 너네가 아냐고!

25년 살아본 결과 STP 성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해본 체크리스트에 모든 항목이 해당됐다. 요약하자면,, 남들보다 훠얼씬 예민하다. 술이나 카페인을 먹으면 펄펄 끓어오르고, 조금만 기분 나쁘면 다 토해버린다. 후각도, 시각도, 감각이 예민하다. 그때 이 책의 결론은 이런 나를 받아들이고, 남들과 다른 대처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혹시 궁금하신 분 있다면 간략하게나마 이 포스팅을 읽어보시길)
https://blog.naver.com/ze_zeh/221613646980



3. 나로 서기
"나 이제 딸로 안 살래." 하는 선언은 황당할 거다. 나 그 자체로 살겠다는 다짐은 누구에게나 낯설다. 집단주의가 팽배한 한국에서는 요상한 놈으로 취급받기 딱 좋은 언어다.  

카톡이 싫다는 내 말은 누구의 다정하고 좋은 친구로, 괜찮은 딸로, 유능한 스터디원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외침이다! 착한 아이 딱지를 달고 사는 나에게 이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나를 노이지하게 만드는 놈들이 가타부타 싫어서 카톡 좀 안 하겠다!

내 일상은 계속 대화하지 않아도 안온하다! 이미 우리 집에서 태어난 순간부터 노력하지 않아도 행복이나 즐거움은 도처에 깔려있었다!

한편으로 "나 그거 사실 싫었어"류의 발언이 만개 정도는 더 있어서, 이렇게 살다 간 사회에 발을 못 붙일까 봐 두렵기도 하다.



4. 투명한 공간
카톡도 인간이 하는 일이라서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타인을 배려하는지 알 수 있다. 카톡이라는 장치가 그들의 단점을 극대화시킬 뿐이다.


나의 카톡 혐오사는 유구하다. 카톡이 생긴 이래로 자주 단톡방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엔 남류 성희롱적 농담을 불편해하는 게 지쳤고, 나중엔 감정쓰레기받이가 되는 게 불쾌했다.  
한번은 카톡방에 구구절절 이유를 설명하고 나갔다. 단톡방에 오래 속한 당사자로서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내가 어떤 마음으로 단톡을 나가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다. 돌아온 답은 '세희가 더 이상 우리랑 친하고 싶지 않나봐'하는 반응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느낄 걸 알아서 수천번 망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이해하기 위해 요만큼도 애쓰지 않는 이들을 위해 왜 그렇게 고민했나 싶다.

그냥 얘기가 재미없으면 언제든지 나갈 수도 있고, 에너지가 소모되면 갑자기 응답을 안 할 수도 있으면 좋겠다. 카톡에 그런 감지 장치를 만든다면 나 같은 사람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을 텐데.



5. 언어 점령
"아 걔, 갑자기 잠수 타고 별로야." 이런 말 말은 줄어들고..
"카톡을 즉각적으로 답하는 사람이 왠지 싫다" 같은 표현을 장려돼야 한다. 이건 친구가 어제 해준 말인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사실 나도 그래! 좀 늦게 읽고 그래야지 사람이!


6. 해쉬테그 배설
'카톡은 배설이다'
예전에 문자로 보낼 땐 함축해서 보냈던 것 같은데, 카톡은 지금 현황을 중계해서 피로하다. 누군가의 생활을 정리 없이 생중계당하는 건 고통스럽다. 내 인생 하나 소화하기도 벅찬데 말이지. 똥은 각자 싸고. 각자 집에서 맛있는 요리를 해서 만나는 삶을 살고 싶다.



7. 카톡 말고 똑똑
어느 외국에서는 일정 연령이 지나면 방에 들어갈 때 가족이라도 방을 '똑똑' 두드려야 한다고.
이건 사회에서도 적용돼야 하는 정언 명령이다. 나처럼 시간적, 공간적 독립이 필요한 사람에겐 더더욱.
그만 침범하시고 노크하시라구여!



8. Turn off 가면
가면을 벗어던지고 살아갑시다 우리 모두.  
연결되지 않을 권리라는 말은, 가면을 쓰지 않을 권리랑 같은 말 같아요. 언제든 소셜룰을 지켜야 하는 지긋지긋한 삶을 던져버립시다!
적극적 안읽씹 운동을 함께 해나갈 분 모집합니다.
'나를 불행하거나 불안하게 하는, 너의 삶의 모든 요소와 단절되겠다'는 나 자신을 위한 외침...!  


9. 마지막 변호
이 글은 이렇게까지 설명했으니 이기적으로 굴어도 '너무 미워하지 말라'는 소심한 메시지다.
그리고 나는 카톡을 할 때도 1-8번까지 생각하는 졸라 복잡스런 인간이라는 사실 알아달라. 내가 얼마나 피곤하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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