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슬픔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크리스마스이브에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났다. '전략적 독서모임'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회과학 서적 위주로 언시용 글감을 모으기 위한 곳이다. 여느 언시 집단과 마찬가지로 남자 한 명에 여자 다섯이었다. 남자는 장수생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남자가 본인밖에 없어서 아쉽다는 말을 덧붙였다. 속으로 '어쩌라고'라고 생각했다. 남자 언시생과 장수생, 독서 모임의 조합이라니. '맨스 플레인'의 기류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그는 귀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설정한 카테고리가 너무 방대해서 나는 좁히자고 제안했다. 검찰개혁, 혐오표현 등 구체적인 키워드를 말했다. 그는 "그건 좀 지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속으로 나오면 보자 이놈아 라고 생각했다. '언시용' 책 리스트를 꺼내 몇 개를 말했다. 그는 "저는 그 책을 읽어서요"라고 답했다. 어이가 없어서 비웃음이 나왔다. 어떤 분이 강준만 책을 추천했다. 나는 강준만 책에 써먹을 만한 사례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는 잽싸게 "강준만 책은 요약하기보다는 혼자 두고 읽어야죠"라고 반문했다. 나는 이 모임이 그런 사례들 모으자고 만난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나는 통계나 근거 위주로 하면 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는 통계는 필요 없다고 했다. 사사건건 내가 하는 말 끝마다 꼬투리를 잡아 물었다.
나는 그가 웃기지도 않았다. 이런 류의 남자들을 살면서 너무 많이 만나봤기 때문이다. 귀는 없고 입만 있는 종족들. 머릿속에 맨스 플레인 하는 인간 한 명이 추가됐다는 신호가 들렸다. 맞은편에 있는 여성분이 '왜 비웃는 표정을 지으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지 말만 해서요'라는 눈빛을 보냈다. 고까움은 사랑만큼이나 숨기기 힘들다. 나오는 길에 그는 "여기 있는 분들 다 남친 있으시죠?"같은 재미도 감동도 없는 농담을 했다. 나는 대답 없이 목례만 하고 나왔다.
친구에게 어이없는 크리스마스이브담을 들려줬다. 친구는 화도 내지 않고 그 상황을 웃어넘기는 내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맞다. 나는 이런 상황에 통달했다. 여남이 섞인 모임에서 무례한 얘기를 할 때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A부터 Z까지 다 시험해봤기 때문이다. 무례한 말에 더 무례하게 말해보기도 하고, 가만히 있어도 보고, 위트 있게 넘겨도 봤다. 이제는 그 에너지조차 투자하지 않는다. 시간이 채가 돼서 괜찮은 인간을 걸러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도 시트콤처럼 어이없고 웃긴 일이 생겼구나. 브런치에 글감으로 적어야지 하고 말았다.
한 때 나는 과하게 친절한 여성이었다. 어느 집단에 가나 적응을 잘하는 막내. 잘 웃고, 모든 사람들의 말을 잘 받아주는 사람. 기분 나쁜 소리를 들어도 분위기를 맞춰주는 사람이었다. 내 몸이 고갈되면서 억지로 부리는 친절이 불편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 나는 돈도 받지 않으면서 고강도 감정노동을 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감정 노동하는 친절한 여성으로 사는 건 끔찍하다. 언시반에 있을 때 사람들을 내게 각종 실패담과 고민을 시도 때도 없이 털어놨다. 남사친들은 내게 친절하게 페미니즘을 설명해달라며 전화를 해댔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이들이 돈을 빌려달라고 자주 연락왔다. 친절한 여성으로 살 때 나는 하루 종일 이런 것들을 받아내느라 번아웃됐다. 너의 친절이 덕이 돼서 돌아올 거라는 격언은 가부장제가 만든 음모다. 나의 호의는 남들의 뻗을 자리가 돼서 돌아왔다.
최근에 배려심이 깊은 언니 M과 B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다. 지금 겪고 있는 시공간이 달랐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친절하게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한 해를 보냈다. 얼마나 쉽게 생각했으면 그런 말을 했겠냐고. 친절하나 친절하지 않으나, 올 사람은 오고 갈 사람은 간다고. 있는 모양 그대로 살고 싶다고. 그러면서 B는 삶이 방어적이 되는 것 같아 서글프다고 말했다. 나는 자기 방어가 아니라 자기 보호라고 말했다. 누군가 나를 노예로 길들이려는 시도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적극적인 투쟁이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는 내게 그래서 독서모임을 계속 나갈 거냐고 물었다. 나는 "도움되면 계속하게"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