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들렌 Dec 31. 2019

나의 SNS 변천사

왜 나만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별생각을 다할까

인턴 면접을 이틀 앞두고 있다. 너무 하기 싫어서 오랜만에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인스타그램은 회피 본능과 찰떡이다. (공부해야 하는) 부동산 정책은 이맛도 저 맛도 아니었는데, 인스타그램은 씬 젤리처럼 느껴졌다. 나는 SNS에서 남 얘기 보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남들 잘 사는 얘기 보면 왠지 삐까뻔쩍하게 살아야 할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워진다.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길 건강한 멘탈이 내겐 없다. 그래서 최대한 피한다. 팔로우를 끊으면 티가 날까 봐 다 숨겨 놓는다. 팔로우하는 사람이 200여 명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10명 남짓이다.


시간을 때우고 싶어서 다른 피드에도 들어가 봤다. 피드를 이리저리 넘겨보다가 대학교 1학년 때 친했던 친구들 인스타를 발견했다. 친구들을 그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대외활동을 올리던 곳에는 취업이 자리했다. 놀랍게도 몇몇은 그때 만나던 애인을 지금까지 만나고 있었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나에게만 짧은 걸까. 여행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사진이 많았다. 나도 스무 살엔 친구들과 경쟁적으로 SNS를 올렸다. 대외활동을 하나 끝낼 때면 '이렇게 똑똑하고 유능한 나'를 은근히 드러냈다. 이게 진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적당히 치고 빠져야 한다. 내 연애도 비슷했다. 노골적으로 연애를 드러내기보단 은연중에 우리의 사랑을 나타냈다. 은근함의 미학을 드러내기 위해 애인과 만나서 부단히 일상을 찍어대야 했다.


운이 좋게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러웠던 애인에게 차였다. 애인은 괜찮은 구석이 많았지만 그가 정상성에 적확하게 입각했기 때문에 더욱 사랑했다. 키도 크고,  잘생겼고, 공부도 잘했다. 애인과 헤어진 것보다 트로피 같은 연애 사진을 지우는 게 더 아팠다. 그는 "나랑 사귀는 너를 더 사랑하는 거 같아"라고 말했다. 입으론 아니라고 말했지만 속으론 인정했다. 알고도 고치기 힘들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그와 헤어지고 내 속은 텅 비었다. 우습지만 그때 처음으로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그때 연극성 성격장애를 앓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보다, 남들에게 보이는 게 더 중요했다. 가볍고 많은 좋아요는 나를 흥분시켰다. 자랑할 게 없이 혼자 남겨진 나는 너무 초라했다.


자기 전시의 부작용은 여러 곳에서 문을 두드렸다. 연인 사이에 발생한 문제를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스무 살 초반 여성이 연애에서 겪을 만한 각종 고통에 대해 함구했다. 내가 자랑했던 만큼 고통은 되돌아왔다. 내가 좋아요를 찍어주던 페친은 물음표 살인마로 변했다. 왜 헤어졌어, 그 사람은 누구 만난대?, 넌 누구 만나? 같은 질문이 내 가슴을 쑤셔댔다. 그 이후로 나는 '절대 애인과 찍은 사진을 올리지 않겠다'라고 결심했다.


내가 허용할 수 있는 게시물의 범위를 점점 좁혔다. 한날은 좋아하던 언니가 취업 준비에 힘들어했다. 그러다가 취업이 되고 나서 페이스북에 200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았다. 옆에 있는 다른 언니가 그걸 보고 힘들어했다. 그때 어렴풋이 혹시 훗날에 내가 취업하게 된다면 먼지처럼 회사를 다니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아직 취업을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이성애 전시를 최대한 적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는 이성애 지옥이니까. 멘토링을 하면서 연애/학점/혁명을 고민의 카테고리로 살 수 있다는 게 사치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미미는 스무 살 때부터 지구의 작은 점으로 살고 싶다고 자주 말했다. 그때부터 미미는 자기 말이 칼이 될 수 있는 걸 알고 있던 거 아닐까.


몸집이 작게 살고 싶지만, 여전히 쓰고 싶다. 그래서 어떻게 더 섬세하게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아직 물음표만 던져진 단계라서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다 지워버렸다. 취업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우리 모두가 느끼는 초라함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양가적이고 복잡한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고 싶다. 한편으로 스무 살 때랑 피드를 비슷하게 꾸미는 친구들이 부럽다. 아직도 얘네는 SNS에 통수를 맞지 않은 것인가. 왜 이 머리 터질 듯한 질문은 나에게만 다가온 것인가.


PS. 예빈 박사는 내 최애 SNS 팔로워다. 블로그도 인스타그램도 다 좋다. 빡치는 순간도, 불행한 순간도, 짜릿한 순간도 똑같이 전시하는 박애정신이 있다고나 할까. 작년에 예빈에게 우울한 얘기만 할 것 같아서 만나기 두렵다고 했다. 예빈은 "언니, 좋은 얘기는 다 가짜 같아"라고 답했다. 나는 예빈이 작가로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예빈은 기억에 남는 구절을 던지기 때문이다. 거의 송은이가 김숙이 재밌다고 하는 수준으로 얠 지지한다. 샤워하다가 자주 저 말을 생각했다.


PS2. 내가 SNS를 줄이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나와 가까운 지인의 불행 때문이었다. 내가 불행할 때 가까운 이들이 행복을 전시하면 왠지 내 마음에 공감을 못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냐면 나는 지인이 불행할 때 함께 마음이 아파서 업로드를 하지 않으니까. 결론적으로 나랑 비슷한 사람들만 곁에 남았다.

시간이 채가 돼서 사람을 걸렀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토록 보통의>에 나오는 복제 인간 이야기가 떠오른다. 여자는 우주 탐사를 하기 위해 복제인간을 만들어놓고 떠난다. 이 사실을 몰랐던 남자는 복제 인간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여자가 돌아오고, 복제인간은 다른 도시로 떠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복제인간을 찾아간다. 서로 다른 경험을 보내면 제 아무리 복제인간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이 된다. 작가는 평소에 매일 같은 골목길을 다녔는데, 어느 날 다른 길로 가보고 싶었단다. 그는 본인이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꼈다고 했다. 시간과 경험은 사람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들어가면 기분 좋은 SNS: 내사랑 혜윤
작가의 이전글 별놈의 맨스 플레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