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Sayoo


긴 시간 동안 나는 내 자신이 그다지 예민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무덤덤한 편이라고, 사람들로부터 상처도 잘 받지 않는 데다가 상처를 받아도 별 타격이 없는 편이라고, 그렇게 여기며 살았다.


누군가 나에게 “넌 정말 무덤덤한 것 같아.”라고 말하면 기분이 좋아지고는 했다. 나를 잘 알아주는 것 같아서 고마웠고, 기뻤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런 말에 내가 기분이 좋았던 것은 '진짜 모습을 들키지 않았어.' 하는 안도감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는 매우 예민한 사람이지만, 그 누구에게도 나의 예민함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 자신을 무던한 사람으로 늘 포장했다.


오랜 시간 나를 포장하다보니 결국에는 나 자신까지 나를 착각하게 되어버렸다. 나는 태연하고 무심한 사람이며, 그래서 누구든 나와 지내기가 매우 편할 것이라고. 그런 식으로 포장하고 포장해서 어느새 진짜 나는 사라지고 가짜 내가 나를 대신해서 살고 있었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내 자신이 '초민감자'라는 사실을 매우 잘 안다. 초민감자인 내 모습이 마음에 들 때도 있다. 물론 여전히 힘든 구석이 있고, 여전히 머리 아플 만큼 생각을 많이 하고, 여전히 타인의 모든 감정을 흡수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세상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나의 예민함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 안에 숨어있으면서 작게 포개지고, 층층이 쌓이고, 그러면서 단단하게 굳어버린 나의 예민함을 이제는 밖으로 꺼내놓으려고 한다. 나의 글이 나와 같은 예민함으로 인해 한없이 지쳐있는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조금의 재미 또는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실 예민한 사람은 곳곳에 숨어있다. HSP(highly sensitive person) 개념을 처음 만들어 낸 엘레인 아론 박사는 HSP라는 예민한 기질의 사람들이 15~20% 정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쩌면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예민함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예민함은 부끄럽거나 나약한 것이 아니다. 예민함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특성 중 하나다. 예민한 사람은 타고난 대로 예민하게 살아가면 된다.


그래, 이것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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