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민감자'라는 귀여운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건 블로그 덕분이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한 것은 재작년 겨울 즈음이었다. 파워 블로거가 되겠다거나, 1일 1포스팅을 하겠다거나 하는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지러운 내 마음을 정리하고 싶을 뿐이었고,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 중 하나가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일 뿐이었다.
그 때의 나는 회사를 그만둔 상태여서 시간이 좀 있었다. 사실 나에게 퇴사는 전혀 계획적인 일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나는 돈을 벌어야 했고, 커리어도 끊겨서는 안 되었다. 그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어느 날 갑자기 퇴사를 하겠다고 회사와 남편에게 알렸다. 그리고 도망치듯이 집으로 돌아왔다.
번아웃이었던 걸까?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모니터에 떠 있는 문서의 글자들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빙글빙글 돌았다. 내 머릿속도, 마음도, 인생도.
회사를 다니던 시절, 나는 매우 예민했고, 성급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만족스러운 결과는 하나도 없었다. 내 주위의 몇 사람들은 나의 이러한 성급함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나에게 조언했다.
“성급해하지 마. 인생은 생각보다 길어.
장기전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그들의 진심 어린 조언을 귓등으로 듣고, 자꾸만 무언가를 찾아다녔다.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할 만한 것,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것 등으로 나를 치장했고, 그래서 내 인생은 꽤 멀쩡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나 스스로도 착각했다.
회사를 그만둔 나는 별로 멀쩡하지 않았다. 공허했고, 허전했으며, 불안했다. 남들은 멀쩡히 잘 다니는 회사를 나는 왜 참아내지 못하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정신과를 찾아간 적도 있었다. 정신과를 찾은 직접적인 이유는 지하철 때문이었지만. 전에는 출퇴근하면서 멀쩡히 잘 타던 지하철이었는데, 갑자기 어느 날 숨이 막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시루떡처럼 눌리고 포개진 지하철 안에 내가 함께 깔리고, 뭉개져서 도저히 살아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의사는 나에게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갑자기 버거워진 나에게는 무언가 분명 문제가 있었다. 나의 모든 감각들은 갑자기 전원 버튼이 한꺼번에 다 켜져 버린 것처럼 예민해졌고, 예민해진 만큼 내가 느끼는 인생의 무게는 몇 배로 불어났다. 깊이 잠 자고 있던 감각들이 전부 깨어난 듯 했다.
모든 감각들이 깨어난 그 느낌은 물속 깊은 곳에 억지로 눌러놓았던 온갖 먼지들이 순식간에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과도 같았다. 나의 물은 그동안 수용돌이를 치고 있었고, 그래서 나를 괴롭히는 수많은 먼지들은 밑에 가라앉아 떠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회사를 그만둠과 동시에 나의 물은 갑자기 잔잔해졌다. 그러면서 먼지들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예민해진 나는 먼지만큼 작은 것들까지 느끼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말, 누군가의 표정, 누군가의 제스처, 누군가의 숨소리까지. 누군가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나를 뚫고 들어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때문에 온몸이 얼어붙기도 했고, 물 밀듯이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언제나 이런 느낌을 느끼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그동안은 눈앞의 무언가를 쫓느라 소진되어서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었다.
여러 깨달음을 얻으며 나는 블로그에 자잘한 기록들을 남겼다. 책에 대해 기록하기도 했고, 내 생각들을 정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여러 이웃과 소통을 하게 되었는데 - 이 과정이 매우 새롭게 느껴져서 나는 꽤 즐거웠다 - 그중 한 이웃에게 특히 마음이 갔다. 그 이웃이 어느 날 나의 글 하나에 이런 덧글을 남겼다.
"글을 읽어 보면 아마도 초민감자이신 것 같아요."
나는 그의 덧글을 유심히 보았다. 감자도 아니고 '초민감자'라니? 감자를 떠올리게 하는 이 귀여운 단어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그래서 열심히 찾아보았다. 초민감자에 대하여.
먼저 초민감자란, 엠페스형이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타인의 감정을 ‘자기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로, 정서적 감수성이 매우 높으며 동시에 공감력도 뛰어나다. 초민감자의 특징은 정서 구조의 경계가 약하다는 점인데, 이로 인해 나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구분하기 어렵다. 이들은 타인의 표정과 몸짓, 감정을 자동으로 모방하고 깊이 공감한다. 긍정적인 것만 모방 및 공감한다면 괜찮겠지만, 부정적인 것 또한 모방 및 공감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매우 빠르게 지치고, 상처도 많이 받는다.
초민감자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책으로는 위 이웃이 소개해 준 <나는 초민감자입니다>라는 책을 추천한다. 책에 나온 항목들로 자신이 초민감자인지 아닌지도 테스트해 볼 수 있다. 아래에 초민감자 자가 진단 문항 중 일부를 가져와 보았다.
- 지나치게 민감하고 수줍음이 많다거나, 내성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 자주 압박감을 느끼고 불안해하는가?
- 무리에 섞이지 못한다는 기분이 자주 드는가?
- 어디를 가든 일찍 나오고 싶을 경우를 대비해 본인의 차를 가져가는 편인가?
- 친밀한 관계로 인해 숨이 막히게 될까 두려운가?
- 자연 속에서 재충전을 즐기는가?
- 여럿이 모이는 것보다 일대일이나 적은 인원과 교류하는 게 좋은가?
나는 해당 자가 진단에서 ‘완전한 초민감자’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동시에 나는 Highly Sensitive Person이라는 심리학적 개념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HSP라고도 불리는 이 개념은 초민감자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지만, 그래도 꽤 많은 유사성을 지닌다. HSP란 외부적 자극과 감정적 신호, 또는 미묘한 변화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민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HSP의 주요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깊게 사고하는 특징, 2) 과도한 자극에 쉽게 피로해짐, 3) 감정 반응성 및 공감 능력, 4) 미묘한 자극을 감지함.
HSP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심리학자 엘렌 아론이 쓴 <Highly Sensitive Person>과 <Highly Sensitive Parents>를 추천한다. 해당 책들에도 마찬가지로 HSP에 대한 자가 진단 테스트가 포함되어 있다. 전체 테스트에서 True가 14개 이상이면 HSP라고 볼 수 있는데, 나는 21개가 True로 나왔다.
그러므로 나는 초민감자이자 HSP인 사람인 것이다.
(HSP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래 링크를 통해 직접 테스트를 해볼 수 있다.)
https://hsperson.com/test/highly-sensitive-test/
'초민감자'를 알게 된 이후에도 블로그는 한동안 나의 일기장 역할을 했다. 잠시 텀을 두고 그렇게 인생을 정리한 덕분에 지금의 나는 나의 예민함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예민한 나대로 살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이란, 결국 나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동안 나는 나의 예민함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민하지 않은 척했다. 실제로 내가 예민하지 않다고 믿을 때도 있었다. 나의 내면은 극도로 예민한데 나의 겉면은 예민해 보이지 않으려고 하니까 내 안에는 수많은 먼지가 가득 쌓이게 되었다.
남들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를 썼던 나는 이제는 그냥 나 자신이 되려고 한다. 감자를 떠올리게 하는 이 귀여운 단어가 나를 표현하는 매우 적절한 단어임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나 자신이 되기 위한 첫 단계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는 초민감자이고, 초 예민한 사람이며, 때로는 예민함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
이 당연한 진리를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진짜 나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이제야 밟고 있으니, 이제야 비로소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초민감자로서, 예민한 어느 한 사람로서 나는 더욱 그런 나 자신이 되어갈 예정이다. 이를 통해 내 안의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조금 더 당당하게 내 인생을 살아나가기를, 그렇게 바라며 글을 종종 써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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