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민감한 사회 생활-(2)

by Sayoo


초민감하게 다른 사람을 감지하고, 숨겨진 속마음을 읽어내고, 읽어낸 속마음을 토대로 일을 조율하는 능력. 이 능력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 아이템 하나를 장착한 것과도 같다.


하지만 이 능력의 가장 큰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나의 에너지가 너무나 빠르게 고갈된다는 점이었다. 나의 모든 감각을 외부로 향하게 두고 타인이 원하는대로 나를 움직였기 때문에 나는 너무나 쉽게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긴장한 상태로 보낸 후 집에 돌아오면 나는 고갈되어 바닥에 쓰러진 채로 하루를 마감해야 했다.


초민감한 사람에게는 그래서 반드시 휴식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쉽게 녹초가 되기 때문이다. <Highly Sensitive Parents> 책에도 'REST, REST, REST'라고 단호하게 쓰여져 있다.


"HSP must avoid, manige, and recover from overstimulation in order to be our best at anything."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잘 몰랐다. 시간이 생기면 강의를 듣고 공부하거나 무언가를 더 도전하려고만 했지 좀처럼 쉬지를 않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였던 이유는 내 안에 숨어있던 어떤 문제 때문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의 영향으로 인정 욕구가 매우 강한 사람으로 자라났다. 남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고,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인정 욕구가 높은 사람들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무언가 킥(kick)이 될 만 한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가 바로 나였다.


킥이란, 공허함을 없애주는 즉각적인 보상과 같다. SNS의 '좋아요'에서 느끼는 쾌감과도 비슷하다. 인정을 받고 싶은 사람들은 주목을 받는 행동이나 새로운 성취, 변화, 자극적인 활동을 통해 킥을 얻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20대와 30대의 나는 킥을 얻기 위해 자꾸만 무언가를 찾고, 도전했다. 개발 공부를 시작하거나, 독립 출판물을 내거나, 앱을 기획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등의 모든 일들이 킥을 추구했던 것임을 그 즈음의 나는 전혀 알지 못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직도 참 많이 했는데 이 또한 킥의 일부였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나는 나 자신이 '도전적인' 사람이고, 예민하지 않아서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는' 사람인 것으로 생각하곤 했다. 꾸준히 나의 예민함을 가리고, 지워서, 없애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회 생활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일들로 보냈다. 이러한 시간들 속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므로, 나는 나의 예민한 감각을 온 힘을 다해서 추켜세워야 했다. 누워서 편히 휴식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휴식은 곧 도태라고 나는 그렇게 여겼던 것 같다.


그러므로 당연히 나는 너무나 지쳐있었다.


사회 생활을 하는 동안, 나의 초민감한 능력은 때로는 반짝거리며 빛났다. 그래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초민감한 능력을 사용하면 사용할 수록 나는 빠르게 소진되었고, 파편처럼 부서졌다. 그리고 가뭄 속의 식물처럼 메말라 갔다.


휴식만이 살 길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나는 이불 속에 누워야 하고, 책으로 도피해야 한다. 나의 초민감한 능력을 적절하게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다독여 주어야 한다.


초민감자에게 사회 생활은 수많은 자극의 집합체다. 그래서 쉽게 과부하에 걸린다. 한 명만 만나도 그의 인생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듯 한데, 회사를 다니면 수십 명을 한 번에 만나야 한다. 사실, 회사를 다니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결코 고립되어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니까.


그러므로 초민감자의 사회 생활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들의 ‘초민감’은 능력이라면 능력이지만, 반드시 휴식을 전제로 해야 한다. 휴식할 시간이 전혀 없다면 출퇴근 시간이라도 확보하는 것이 좋다.


내 주변의 또다른 초민감자인 나의 남편(그는 스스로가 아니라고 여기지만)은 출퇴근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과학 또는 역사 유튜브를 듣는다. 그 시간이 그에게 숨 쉴 틈을 주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사실 글을 쓰기 전에 남편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자기도 초민감자 맞지?“


그랬더니 방금 이런 답이 왔다.


“나는 감자튀김인데요.”


그래, 둘 다 감자는 맞다. 초민감자라는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기보다는 신랑 같은 태도로 인생을 사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훗.


-

이전 03화초민감한 사회 생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