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민감자의 특징 중 하나는 타인의 감정을 '자기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특히 사회 생활할 때에는 정말로 큰 도움이 된다.
관련해서 기억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회사를 다닐 때의 일이다. 나와 동료 한 명, 그리고 임원급의 상사 한 명이 함께 회의실에서 회의를 할 때였다. 우리는 A안, B안, C안을 놓고 어떤 안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 의논 중이었다. 함께 앉아있던 임원급의 그 상사는 범접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매우 포스가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사람에게 '기(氣)'가 있다고 믿는다. 그는 자신의 주위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목적 의식이 분명한 데다가 다른 사람들을 장악하는 어떤 지배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나로서는 그런 기를 누구보다도 빠르게, 또 강하게 느끼는 편이었다. 기가 센 사람과 함께 있으면 들이마시는 공기부터가 무거워졌다.
이미 기가 센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도 문제였는데, 더 큰 문제는 A안과 B안, C안 중에서 어떤 안이 정답일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나로서는 세 가지 안 모두 좋아보였다. '뭐든지 빨리 결정해서 진행하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해결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말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세 가지 안 중에 어떤 안으로 결정할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의견을 주고 받는 것이 그 날 회의의 목적이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동료 한 명이 함께 있었다. 그는 나보다 훨씬 적극적인 편이었고, 그래서 자신의 의견을 먼저 제시했다.
"B안이 어떨까요? 훨씬 직관적이고, 명확하니까요."
그의 말이 끝났으나, 회의실은 정적이었다. 상사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B안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이제 확률은 반반이었다.
"A안은.."
하고 내가 말을 뗴었다. 상사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눈빛을 아마도 읽은 것 같았다.
"심플하지 않으니까 C안이 어떨까요?"
라고 내가 말했을 때, 상사는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런 질문이 들어왔다면 이제 다 온 것이다. 나는 C안을 보면서 최대한 머리를 쥐어짜냈다. 이럴 때는 뭐라도 이유를 말해야 했다. 그것이 정답이든 아니든 괜찮았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당시의 나는 어떻게든 이유를 설명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것보다는 이것 때문에 C안이 아니고?"
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지만. 어쨌든 성공이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일처리를 할 때에 상사 등 윗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았다. 그렇다. 눈치를 본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하게는 눈치 보는 능력을 무의식적으로 발휘했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일부러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정말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을 느끼고는 했다.
이런 능력 덕분에 나는 동료 평가에서는 대부분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읽어내고,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일이 나에게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의 평가 결과를 보며, 한 상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글쎄, 동료 평가가 좋다는 게 일을 잘 한다는 뜻은 아니지. 이건 그냥 사람이 좋은 거야."
그 말은 나에게 꽤 상처가 되었다. 그의 말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한동안 나 자신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눈치를 많이 보고 다른 사람을 맞춰주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물론 지금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빠르게 파악하고, 조율해서, 어떻게든 결론을 짓는 것만으로도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아쉽게도 더 이상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타인의 감정 및 생각을 나의 것처럼 느끼는 이러한 특성은 사회 생활에서 매우 탁월한 능력으로 작용한다. 나의 경우에는 정말 그랬다. 위의 사례와 비슷한 일들이 종종 있었고, 그래서 나는 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방향을 잡기가 수월했다.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