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민감자는 동기화 중 ⋯

by Sayoo


전에 말했듯이 초민감자의 가장 큰 특징은 타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흡수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 흡수 능력은 타인에게 초공감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장점이다. 타인의 상황에 깊이 공감하여 함께 울어줄 수도 있고, 진정성 있는 위로를 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 흡수 단계에서 초민감자들의 내부에서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우선, 타인의 감정을 아주 빠른 속도 및 엄청난 강도로 흡수해 버리기 때문에 내부 에너지가 급격하게 소진된다. 누군가 발산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에 차오르는데, 때로는 그 감정을 증폭해서 받아들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들의 내부에서는 거대한 감정적 홍수가 일어나기도 한다.


감정은 원래 쉽게 전염되는 것이다. 상대방이 불안해하면 나도 불안해지고, 상대방이 기분 좋으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러한 전염은 바이러스처럼 공기를 타고 퍼지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신경 회로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타인의 미소나 눈빛, 몸의 각도나 호흡 패턴 등으로 감정을 알아차리곤 하는데, 이때에 우리의 신경 네트워크가 같이 활성화된다. 그 결과, 우리의 뇌는 타인의 감정에 반응하는 동시에 ‘나도 저런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사실 감정은 전염된다기보다는 ‘동기화’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HSP나 초민감자는 일반적인 수준보다 훨씬 강도 높은 감정 동기화를 경험한다. 타인의 감정이나 분위기를 극도로 세세하게 감지하고, 감정을 깊이 처리하는 특성 때문이다.


나 역시 여러 번의 감정 동기화를 겪으며 살았다. 그럴 때엔 가슴속 어딘가에서부터 뜨거운 덩어리가 만들어지면서 목구멍까지 가득 올라오는 느낌을 받고는 했는데, 그 열기 때문에 나는 말을 할 수 없거나, 얼어붙거나, 눈물을 흘리곤 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한 언니가 나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는 아이를 잃어버릴 뻔한 적이 있어."


다행히 아이는 두 세 시간 뒤 찾았다고 했다. 지나고 나니 별일 아니었다고 언니는 말했지만, 언니가 그 날 느꼈을 엄청난 두려움은 고스란히 내게로 왔다. 다시는 아이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고통, 두려움, 좌절감. 그런 종류의 감정은 몸이 부서질 것처럼 강렬한 것들이었다. 나는 당시 언니가 느꼈던 감정을 나의 감정인 것처럼 느꼈고, 그래서 괴로웠다.


언니랑 나눴던 그 날의 대화는 여전히 나에게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테이블 건너편에서 나에게 말을 건네던 언니의 몸짓과 눈빛, 목소리, 손동작, 떨리는 입술, 눈물이 비치는 맑은 눈동자. 나는 언니와 동기화가 된 듯이 연결되었고, 이렇게 한 번 동기화된 기억은 내 안에 선명하게 저장된다.


또 다른 기억도 있다. 한 친구랑의 대화였다. 친구는 아주 유쾌하고, 호탕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를 정말 좋아했다. 그날, 그는 나에게 자신의 엄마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우리는 누구나 부모와 관련된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법이다. 어떤 책에서인가 '대부분의 아이는 부모로부터 작은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된다'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때문에 '엄마'라는 소재는 늘 우리를 웃게 하면서 동시에 울게도 만드는 것이다.


"엄마는 나를 정말 싫어해."


친구가 나에게 공유했던 엄마의 이야기는 정말 가슴이 아픈 것들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무언가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문제가 존재했다. 그 불분명한 문제로 인해 친구와 엄마는 자꾸만 서로를 갉아먹고, 상처 주고, 삐걱거리고 있었다. 친구는 엄마를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것 같았고,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친구 같고, 친구가 나 같았다.


그때의 나와 엄마의 관계도 위태롭고 흐느적거렸으므로, 때로는 나의 엄마도 나를 싫어하고, 나도 나의 엄마를 미워했으므로, 나는 친구의 아픔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자꾸만 사람들이랑 동기화가 되었다. 때로는 그 시간들이 매우 소중했으며, 때로는 그 시간들 때문에 내 마음도 같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러한 경험들을 반복하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보다는 적은 사람들과 깊게 교류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너무 많은 동기화는 내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 아닐까 싶다.


타인과 자주 동기화되는 나에게는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용량이다. 머릿속에 수많은 데이터가 들어오니까 오류가 자꾸 난다. 그러므로 필요없는 데이터는 지우거나, 용량이 적은 축소된 버전만 남겨두는 것이 좋다. 최적화 저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삭제하고, 수정하고, 최적화 저장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얼마 전에 <피터팬>을 읽다가 이와 관련된 아주 적절한 표현을 발견했다.


"훌륭한 어머니라면 밤마다 챙기는 관습이 있으니,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그들 머릿속을 샅샅이 뒤져서 낮동안 어수선하게 비뚤어진 것을 다시 반듯이 고정해 제 자리를 찾아주면서 다음 날 아침을 대비하는 것이다. 어린이 여러분도 밤새 깨어 있을 수 있다면(절대 그러지 못하겠지만), 어머니가 이런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재미있을 터이다. 꼭 서랍을 정리하는 것 같으니까."

- 제임스 매슈 배리, <피터팬>


그렇다. 바로 정리다. 나는 다 큰 어른이므로, 누군가 내 머릿속 서랍을 대신 뒤져서 정리해주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해야만 한다. 어지러운 생각과 마음은 작게 접어서 맨 밑바닥에 놓고, 맨 윗 칸은 비워놓아야 한다. 밤마다 그렇게 작업을 해놓아야 다음날 말끔한 상태로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초민감한 나는 오늘도 누군가와 동기화 중이다. 무방비한 상태로 누군가의 감정과 생각에 찰싹 달라붙어 그와 같은 감정과 생각에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또다시 얼어붙거나, 눈물을 흘리게 될 수도 있겠지.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면, 그래도 괜찮다. 자기 직전에 서랍을 정리하면 되니까. 나의 서랍을 뒤지고, 꺼내고, 접어두어서 다시 나의 용량을 조금 확보해 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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