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만의 땅을 가지고 살아가니까.

by Sayoo


내가 좋아하는 앤 라모트의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Every single one of us at birth is given an emotional acre all out own.
- 앤 라모트, <bird by bird>


책에 따르면, 우리는 누구나 감정의 땅을 받고 태어났다. 나도 하나, 당신도 하나, 옆집 아저씨도 하나, 먼 친척도 하나, 우리 아이들도 각자 다 하나씩. 우리는 이 땅을 마음껏 꾸밀 수도 있고,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있다.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울 수도 있고, 꼭 필요한 것 한 두 개 정도만 두고 깔끔하게 정돈할 수도 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땅을 어떻게 꾸밀까? 우선, 나는 정원에 해바라기를 가득 심고, 감자도 심을 것이다. 아담한 벽돌집도 하나 만들어야지. 잔디밭 위에는 아늑한 책상과 의자를 놓고, 의자에 편히 앉아 책을 많이 읽고 싶다. 아, 의자는 두 개를 놓아야지. 혹시라도 누군가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고민이 생긴다. 나는 내 땅에 누군가 찾아오기를 바라면서도 사실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꽤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로 마음을 열어야 할지, 얼마만큼 다가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진심을 다 하여 상대방을 대했는데 내 진심이 전해지지 않을 때도 많다. 진심을 다 하지 않아서, 그런 나의 마음을 눈치채고 섭섭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말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는 도무지 정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생각이 많은 편이라는 걸 나도 잘 안다.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타인의 감정을 기반으로 타인을 오해하거나 내 기준에 따라 분석한 적도 종종 있었다. 이러한 나의 성향을 내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쉽사리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저 사람은 상처가 좀 많은 것 같아.’


라고 생각했다가 곧바로 이렇게 바꾼다.


‘아니야, 저 사람은 그냥 저 사람이야.‘


판단이나 분석은 최대한 하지 않아야지. 나와 마주 앉은 사람은 이 사람 그대로 그냥 내버려 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뿐, 나머지는 상대방에게 맡긴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은 회사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에 관계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회사에서는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고, 지켜야 할 규칙이나 매너도 명확하게 공유되어 있다. 정해져 있는 것들이 많다 보니 관계에서 고려해야 할 불확실성이 낮았고, 그래서 편했다.


반면 불특정 다수를 만나게 되는 일반적인 관계는 회사에서의 관계와는 확연히 다르다. 내가 이러한 차이점을 가장 크게 느꼈던 때는 엄마들의 모임에서였다.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나에게는 정말 큰 스트레스였다.


특히 서너 명 이상이 한 번에 만나는 자리는 나를 쉽게 압도하고는 했다. 나는 초민감자답게 사람들 간의 미묘한 감정선을 잘 알아차렸고, 머릿속으로 대략적인 인물 관계도를 그릴 수도 있었다. ‘아, 저 사람은 이 사람을 싫어하는구나.’ ‘내 앞의 사람은 저 사람과는 꽤 친한가 보네.’ ‘끝자리의 저 사람은 이 자리가 정말 불편한가 보다.’ 등 수만 가지 생각들이 쉴 새 없이 휙휙 거리며 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판단 금지, 분석 금지’라는 글자가 빨간색 경고등을 깜빡이며 둥둥 떠다녔다.


그러니 얼마나 내 머릿속이 복잡했을지 아마 상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머리가 복잡한 상태에서 누군가 나에게 말이라도 걸면 나는 로봇처럼 뚝딱거렸다. 때로 거절하기 어려운 부탁을 받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수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의 나는 예전만큼 뚝딱거리거나 혼란스러워하지는 않는 편이다. 경계선을 긋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땅을 먼저 잘 지키고 살아야 다른 사람들과도 잘 지낼 수 있다. 나의 땅 주위에 튼튼한 울타리를 치고 예쁜 문을 달아야 하는 거다.


이렇게 울타리를 치고 경계선을 그으면, 누군가의 감정이 한없이 내 안으로 들어올 때 잠시 막아두기가 쉽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내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이라는 걸 다시금 나에게 각인시킨다. 타인의 감정은 타인의 몫으로 내버려 두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나의 인생이란, 결국 나의 작은 땅에 의자 두 개를 내놓는 것이다. 그 의자에 앉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보며 앉아있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이 작고 소중한 나의 땅을 지키기 위해 나는 쉽게 판단하지 않을 것이고, 경계선도 잘 그어야 한다. 나무와 꽃을 많이 심고, 책상 위에는 향기 나는 촛불도 태울 것이다. 나처럼 예민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누군가 내 땅에 찾아온다면 정성을 다 해서 대접할 예정이다.


누구나 각자의 인생을 짊어지고 사는 것처럼 누구나 자신만의 땅을 가진 채로 산다. 예민한 나는 예민한 나에게 잘 어울리는 땅을 틈틈이 돌보며 살아가겠지. 내가 내놓은 의자에 누군가 편히 앉아주기를 바라며 말이다.

이전 06화초민감자는 동기화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