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고통에 대해 얘기했으니, 오늘은 행복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나는 행복하고 싶은 사람이다. 이런 나의 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일지, 행복하려면 어떠한 것들이 필요한지, 과연 행복을 측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우선,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을 과연 측정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나의 머리로는 한계가 있어서 현대 철학자인 피터 싱어의 의견을 가져와 보았다. 싱어는 행복을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 방법은 행복을 평생에 걸친 고통과 평생에 걸친 행복 간의 차이로 보는 방식이다. 삶에서 긍정적인 수를 모두 더 한 뒤에 부정적인 수를 다 더하여 그 차이를 계산하는 것이다. 나의 행복이 40인데 고통이 60이라면, 40 - 60 = -20이므로, 나의 삶은 고통스럽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방식은 조금 더 간단하다. '지금까지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를 묻고, 그 대답이 '만족한다'라고 나올 경우 그 사람은 행복하다고 정의하는 방법이다. 같은 상황에서 사람마다 다른 대답이 나올 수도 있다.
두 번째 방식에 따라 누군가 나에게 '지금까지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를 묻는다면 나는 솔직하게 '과거는 조금 불만족스럽지만, 지금은 만족한다'라고 대답할 것 같다. 10대와 20대의 나는 너무나 불안정했고, 위태로웠다. 스스로를 자꾸 남들과 비교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얻고자 애를 썼지만 정작 나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그만큼 돌려주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려보면 부끄럽고, 슬퍼질 때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나는 꽤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완벽하지 않은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래서 매우 만족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인 걸까? 완전한 확신은 없다.
초민감자인 나는 때때로 쉽게 무너진다. 삶에서 신경 쓰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크게 크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데, 자꾸만 작게 작게 파고들고 있다. 이렇게 예민한 내가 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에 대해 떠올려보면, 가족과 건강, 친구와 웃음, 희망찬 미래 등의 단어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또 떠오르는 것은 돈이다. 돈이 없다면 기본적인 생활조차 영위할 수 없을 테니까. 무탈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도 중요하고, 누군가와 갈등 없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에게는 중요하다. 중요한 것들이 점점 많아지니까 나의 행복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땅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것 같다.
이 시점에서 나의 아이들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이 난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얘들아, 행복하려면 뭐가 필요한 걸까?"
하는 내 질문에 큰 아이가 얼마나 재미있는 대답을 했는지 모른다. 나는 그날 아이가 했던 대답을 메모장에 적어두고 가끔씩 꺼내보고는 한다.
"(씩 웃으며) 행복하려면요? 잠시만요. 먼저 기초적인 것부터 말해볼게요."
아이는 크게 한 숨을 들이마시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산소, 머리카락, 눈, 코, 코딱지, 귀, 귀지, 입, 턱, 목, 얼굴뼈, 뇌, 몸, 팔, 다리, 심장, 위, 간, 근육, 복숭아 뼈, 관절, 엉덩이 뼈, 척추 뼈, 팔꿈치, 뒤꿈치, 무릎, 그다음에 옷."
나는 아이의 진지한 그 말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생각하는데 팔꿈치와 뒤꿈치가 왜 나오는 것인지.
"그다음에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 그런데 정답이 있어요?"
나는 정답은 없다고 말해주고는 아이들에게 너희의 생각이 궁금했다고 대답해 주었다. 아이들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제일 중요한 것은 첫 번째로 말했던 '기초적인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머리카락, 얼굴뼈, 팔꿈치 같은 거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아이들이야말로 때로는 철학자 같다. 우리 눈앞에 행복이 놓여 있는데도 우리는 미처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팔꿈치가 없다고 생각해 보자. 그것이야말로 나의 불행이 될 텐데 말이다. 그러므로 아이의 말처럼 나의 행복은 사실 팔꿈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행복이란 무엇일지 다시 정의해 보자. 나는 피터 싱어의 첫 번째 행복 측정 방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싱어는 '행복 - 고통'으로 행복의 값을 측정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고통이 0이라면, 최소한 마이너스(-) 상태는 안 되지 않을까? 결국 행복이란, 고통의 부재 상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가장 고통스러웠나? 나는 회사 생활을 할 때 고통스러웠다. 네임 벨류가 좋은 회사들을 다녔지만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퇴사 후에 나의 고통은 반감되다 못해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큰 조직에 속하기보다는 작게라도 나의 일을 해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또한 나는 누군가와 갈등하게 되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다. 갈등을 바깥으로 꺼내서 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은 결코 아니다. 최대한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선호하는데 어쩔 수 없이 갈등이 발생하면 정말 조심스럽게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태도를 보고 타인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것 같다고 얘기한 적 있었다. 하지만 나는 타인을 위해서라기보다 나를 위해서 이러는 것이다. 심한 갈등은 내가 정말 감당할 수가 없다. 갈등이 격해지기 전에 의견을 굽히거나, 그 자리를 피해버리는 것이 나에게 더 이로운 방법이다.
고통의 부재, 즉 나의 행복을 위해 나는 회사 생활은 더 이상 고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은 최소화하려고 한다. 적어도 이 두 가지를 지키며 살면 나의 고통을 최대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결국 행복에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초민감자인 나는 오늘도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이란 결국 고통의 부재이다. ‘행복 - 고통 = 행복값’이므로, 오히려 나의 고통에 집중하여 그것을 감소시키면 결과값이 행복은 커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것들이 다 복잡하고 잘 모르겠다면, 그냥 팔꿈치를 생각하자. 행복은 거창하고, 엄청난 것이 아니다. 행복은 때로는 팔꿈치나 무릎, 아니면 머리카락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며 예민했던 나의 하루를 진정시키고, 나의 고통을 가라앉히면 그것이 바로 행복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