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가족화, 최현숙과 이반지하의 답

[연재] 복지국가를 말하다.

by 안해성

최근, 퀴어 아티스트 이반지하의 ‘이반지하의 이면지’가 그의 유튜브 채널에서 방영중이다. 이 유튜브에 최현숙 작가가 나와 결혼의 반대와 탈가족의 필요성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 두사람의 대화를 따라가다보면, ‘가족중심주의’가 사회 불평등을 유지하고 강화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또 그러면서 권리보장을 넘어서서 사회적으로 팽배해 있는 ‘가족중심주의’를 타파할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는 단순히 성소수자 의제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현상과 문제, 저출생 사회의 문제나 돌봄의 문제에서도 일맥상통한 이야기다.


이러한 사회에 대해 개인과 가족 차원이 아닌 사회 전체가 돌봄을 조직화하고 공급 해야한다는 요구가 늘어나고 이에 대해 국가가 반응하는 것이 결국 ‘돌봄 복지국가’일 것이다. 특히, 돌봄의 주체가 되어 왔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면서 돌봄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고 이것은 국가 차원에서 돌봄노동을 사회가 공적으로 조직할 필요가 생겼다.


그러나, 국가차원에서 개인과 가족의 본연의 일로 여겨졌던, 돌봄을 ‘어디까지’ 분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합의된 원칙이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워보인다. 이에 대해 최현숙 작가는 이반지하와 함께 ‘새로운 상상력’을 펼쳐보자고 제안한다.


자본주의는 여성을 노동시장에 투입시키면서 여성은 돌봄에서 해방됐지만, 시장화된 돌봄노동의 대다수가 여성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 돌봄의 가치는 저하된다. 한국 사회에서 2000년대 이후 돌봄정책의 양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돌봄 영역은 저임금의 비숙련의 여성화된 노동으로 제도화 되고 있다.


더불어서 현재 경제와 산업구조 그리고 가족 구조의 변화로 돌봄을 둘러싼 위험의 맥락도 변하고 있고 이것의 해결법을 모색하고 있는 한편, 최현숙 작가와 이반지하의 답은 ‘가족중심주의’의 타파 즉, 탈가족화라고 이야기한다.


복지국가는 사회적 위험을 제도적으로 예방하고, 해결한다. 그리고 사회가 직면하는 다양한 위험은 사회에 따라 달라진다. 이러한 가운데 중심으로 작용하는 것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이다. 왜냐하면, 여성은 돌봄 담당자이자, 가부장제 사회에서 추가로 투입된 추가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하면서 탈가족화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탈가족화에는 맞벌이 모델과 아동과 노인에 대한 돌봄요구 증가로 이른바 ‘신사회 위험’이 배경에 있다.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게 되면서 여성은 직접 노동자가 되었고 돌봄책임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제도화할 것이냐가 중요해졌다. 대한민국은 지금 이러한 ‘신사회 위험’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반지하는 다시 질문한다. ‘가족 대신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필자는 이글을 읽는 독자와 이반지하에게 권유해본다. ‘복지국가’라는 단어를 써보자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또 모두와 타자가 되어 살지만 세상을 잇는 끝을 붙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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