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지만, 남초사회가 싫다.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남초사회의 그 분위기가 싫다. 물론, 여자라고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모르는 일이다. 남자들 무리에 있으면, 내가 지금 스무 살을 넘긴 사람들과 있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의 유치함이 있고, 그들끼리 힘으로 서열을 나누려고 하며 연예인과 성관계를 맺고 싶다는 둥의 저속한 표현들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물론 모든 남초무리가 그렇지는 않지만, 그런 무리들이 드물지 않다는 것은 경험상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가만히 혼자 책 읽기를 좋아했고, 성격도 내성적이고 부끄럼도 많이 타던 아이였다. 그리고 누군가 이야기를 걸어주지 않으면 먼저 이야기를 거는 일이 잘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또래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 또래문화를 체험해 볼 길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이런 나에게 남초문화의 분위기는 좀처럼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사실, 적응하고 싶지 않았고 이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그런 사회적 자살(?) 행위를 할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그리고 비정상인들 사이에서는 정상인 한 명이 비정상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것은 친구관계를 뛰어넘어서 가족 간에도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했는데 우리 집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형과 나까지 구성으로 보면 남초사회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간혹 가다가 아빠가 그 또래문화에서 했을 법한 이야기를 형에게 하고는 한다. 그러면 나는 또 아빠와 거리 두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집 거실 한켠에 걸려있는 십자가를 바라본다. 특별한 의미는 없고 그저 바라볼 뿐이다.
여태까지는 남초사회와 섞이기 싫으면 섞이지 않아도 되었고, 사람을 잘 파악하는 나름의 능력 덕분에 이리저리 피해 다니고는 했다. 지금의 학과에 진학하게 된 것도 이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사회복지학과는 성비 3:7 정도로 여자가 많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냥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관계를 좋아하는 것 같다. 적당한 거리감이 있으면 선을 넘을 일도 생기지 않고, 상대가 싫어하는 선을 신경 쓰게 된다.
나는 스물세 살 치고는 인생의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중에 제일 어려운 게 이런 관계들인 것 같다. 내 가치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이며,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순간에 나의 불쾌함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관해서. 나한테는 이런 것들을 다 컨트롤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고, 나는 항상 절전모드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저 무시하고 지나갈 뿐이다. 간혹 또래 여자 친구들이 물어보는 남자들의 사석 이야기에 대해서 친구가 없다는 대답으로 일관할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점인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아웃사이더라는 말이 자주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웃사이더라는 단어를 바라보면서 나는 아웃사이더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전에 아웃사이더의 훌륭한 표본이 되어있었다고 생각하며 피식거리고는 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나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책이 제일 친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아웃사이더 일지라도 사람이 더 나을지 책벌레가 되어서 벌레가 되는 것이 나을지 고민하고 있다.